웃음 속에 숨은 욕망의 문법
뚝딱, 나와라
가난한 나무꾼이 산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도깨비는 무섭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고, 씨름을 좋아하고, 사람 놀리기를 좋아하는 존재. 나무꾼은 도깨비와 밤새 술을 마시고 씨름을 했다. 도깨비는 즐거워하며 나무꾼에게 방망이를 주었다. "뚝딱뚝딱" 두드리면 원하는 것이 나오는 방망이.
나무꾼은 방망이로 쌀을 만들고, 옷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부자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웃 욕심쟁이가 도깨비를 찾아갔다. 그러나 욕심쟁이는 도깨비에게 술도 대접하지 않고, 씨름도 하지 않고, 방망이만 달라고 했다. 도깨비는 화가 나서 욕심쟁이를 골탕 먹였다.
흥부전과 비슷한 구조인 것 같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이 설화의 중심에는 도깨비가 있다.
질서를 뒤집는 자 — 트릭스터 원형
융은 세계 신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하나 발견했다. 규칙을 어기고, 경계를 넘고, 권위를 놀리고, 혼돈을 일으키면서도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존재. 트릭스터(Trickster) 원형이다.
한국의 도깨비가 바로 이 트릭스터다. 도깨비는 신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기분이 좋으면 금을 주고, 기분이 나쁘면 골탕을 먹인다. 논리가 없다.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위험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력적이다.
일상에서 트릭스터는 이렇게 나타난다. 회의 중에 모두가 진지한데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그 질문이 분위기를 깨뜨리지만, 돌이켜보면 핵심을 찌르고 있었던 순간. 혹은 — 계획대로 살아가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 안정된 삶 속에서 문득 올라오는 "이게 다야?" 하는 느낌. 그것이 내 안의 도깨비다.
융은 트릭스터가 의식이 너무 경직되었을 때 무의식에서 올라온다고 보았다. 규칙에 너무 매여 있을 때, 체면에 너무 얽매여 있을 때, 인생이 너무 '올바르게'만 돌아갈 때 — 도깨비가 나타나 방망이를 두드린다. 그 혼돈이 불편하지만, 그 혼돈을 통해 경직된 것이 깨지고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도깨비가 술과 씨름을 좋아한다는 설정도 의미 있다. 술은 의식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고, 씨름은 몸과 몸이 부딪히는 원초적 접촉이다. 도깨비와 어울리려면 체면을 벗어야 한다. 격식을 차리면 도깨비는 떠난다. 욕심쟁이가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도깨비와 놀지 않고, 결과만 원했다. 과정 없이 보상만 취하려 한 것이다.
당신의 도깨비는 언제 마지막으로 나타났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도깨비를 두려워한다. 예측할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계획을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한다. 그래서 도깨비를 가둔다. 충동을 억누르고, 엉뚱한 생각을 지우고, "나답지 않은" 행동을 차단한다.
그러나 도깨비를 너무 오래 가두면, 삶이 마른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안전하고, 정돈되어 있는데 — 이상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상태. 융은 이것을 의식의 일방적 발달이라 불렀다. 밝은 면만 키우고 어두운 면을 억누를 때 생기는 메마름.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상처, 소유, 질투, 트라우마, 정체성 불안, 충성의 함정, 돌봄의 환상을 다루었다.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도깨비는 웃으며 말한다 — 너무 심각하게만 살지 마라.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계획할 수 없는 것, 우연과 엉뚱함의 자리도 있어야 한다고.
당신의 삶에서 도깨비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언제입니까. 혹시 너무 오래 가둬둔 것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