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놀부를 만나는 시간
박이 갈라지는 순간
흥부는 가난하고, 놀부는 부유하다.
형제다.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뒤, 놀부는 모든 재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 흥부의 가족은 굶었다. 흥부가 형을 찾아가 밥을 구걸하면, 놀부의 아내는 주걱으로 흥부의 뺨을 때렸다. 흥부는 뺨을 맞고도 기뻐하며 뺨에 붙은 밥풀을 긁어먹었다는 대목은, 이 설화에서 가장 비참하면서도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어느 봄날, 흥부네 처마 밑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 새끼 제비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흥부가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가을에 제비가 박 씨를 물어왔다. 박을 타니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놀부는 일부러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다. 치료하는 시늉을 했고, 역시 박 씨를 받았다. 그러나 놀부의 박에서는 도깨비가, 똥물이, 빚쟁이가 쏟아져 나왔다. 놀부는 모든 것을 잃었다.
권선징악. 가장 명쾌한 구조다. 그런데 정말 명쾌한가.
놀부는 왜 그토록 밉지 않은가
흥부전을 읽고 나면 묘한 감정이 남는다. 놀부가 벌 받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찜찜하다. 그리고 솔직히 — 놀부가 완전히 낯설지 않다는 불편함.
3편에서 다룬 그림자 개념을 여기에 다시 적용해 보자. 흥부와 놀부도 한 인간의 양면으로 읽을 수 있다. 흥부는 우리가 되고 싶은 나 — 관대하고 보상받는 나. 놀부는 우리가 부정하는 나 — 더 갖고 싶고, 수단을 가리지 않으려는 나.
그런데 이번 설화에서는 콩쥐팥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놀부의 행동에는 **모방**이 있다는 것이다. 놀부는 흥부가 한 것을 정확히 따라 한다. 제비를 치료하고, 박 씨를 받고, 박을 타는 것. 겉으로 보면 똑같은 행위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흥부는 제비를 불쌍히 여겨 치료했고, 놀부는 보상을 얻으려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융은 **그림자 통합**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림자를 인정한 뒤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놀부의 실패는 여기에 있다. 놀부는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주 솔직하게 실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 통합이 아니라 **그림자에의 동일시**다. 내 안의 어둠을 의식하는 것과, 어둠에 삼켜지는 것은 다르다.
반대로 흥부에게도 문제가 있다. 흥부는 지나치게 선하다. 뺨을 맞고도 화내지 않는다. 이것은 그림자를 완전히 억압한 상태다. 흥부 안에도 놀부가 있다. 다만 설화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진정한 그림자 통합은 흥부도 놀부도 아닌 제삼의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안의 탐욕을 보되 지배당하지 않는 것. 내 안의 선함을 살리되 자기 억압의 도구로 쓰지 않는 것.
놀부는 왜 그토록 밉지 않은가
흥부전을 읽고 나면 묘한 감정이 남는다. 놀부가 벌 받는 장면에서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어딘가 찜찜하다. 그리고 솔직히 — 놀부가 완전히 낯설지 않다는 불편함.
3편에서 다룬 그림자 개념을 여기에 다시 적용해 보자. 흥부와 놀부도 한 인간의 양면으로 읽을 수 있다. 흥부는 우리가 되고 싶은 나 — 관대하고 보상받는 나. 놀부는 우리가 부정하는 나 — 더 갖고 싶고, 수단을 가리지 않으려는 나.
그런데 이번 설화에서는 콩쥐팥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놀부의 행동에는 모방이 있다는 것이다. 놀부는 흥부가 한 것을 정확히 따라 한다. 제비를 치료하고, 박 씨를 받고, 박을 타는 것. 겉으로 보면 똑같은 행위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다. 흥부는 제비를 불쌍히 여겨 치료했고, 놀부는 보상을 얻으려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융은 그림자 통합을 이야기할 때, 단순히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그림자를 인정한 뒤에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놀부의 실패는 여기에 있다. 놀부는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주 솔직하게 실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 통합이 아니라 그림자에의 동일시다. 내 안의 어둠을 의식하는 것과, 어둠에 삼켜지는 것은 다르다.
반대로 흥부에게도 문제가 있다. 흥부는 지나치게 선하다. 뺨을 맞고도 화내지 않는다. 이것은 그림자를 완전히 억압한 상태다. 흥부 안에도 놀부가 있다. 다만 설화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을 뿐이다.
진정한 그림자 통합은 흥부도 놀부도 아닌 제삼의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안의 탐욕을 보되 지배당하지 않는 것. 내 안의 선함을 살리되 자기 억압의 도구로 쓰지 않는 것.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같은 행위도 동기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금 당신이 심고 있는 박은, 어떤 마음에서 자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