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 Good Morning
먼저, 씹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기분이 나쁘셨을 일부 독자분들께 사죄드린다. 필자는 씹덕이라는 표현이 하나의 키치언어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인상이고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하이컬쳐는 미감을 자극하기 위해 소비되고, 로우컬쳐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소비될 뿐이라고. 누가 한 말인지, 방금 떠오른 말인지, 또는 누군가 한 말에 내가 작위적인 살을 붙인 건지 아리까리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 의견은 어쨌건 저 문장과 동일하고, 특히 하이컬쳐와 로우컬쳐 사이에는 위계가 없으며, 서브컬쳐의 특성 상 ‘씹덕예술’이라는 표현 또한 ‘빅뱅이론(꽈광이론ㅋㅋ)’이나 ‘슈게이즈(찌질이음악ㅋㅋ)’처럼 쿨한 집단이 비웃음을 쿨하게 승화하는 긍정적인 표현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하이컬쳐-로우컬쳐로 대비되는 미감-개성(키치) 사이의 구분감 또한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강남행 시외버스를 타며 알고리즘에 귀를 맡기다 그 좋은 예를 찾았다. 구사(94)의 Good Morning이다.
구사의 Good Morning 은 보컬로이드 UNI 를 활용해 작업된 작업물과 inst를 포함한 총 7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고, 앨범커버 또한 마찬가지로 보컬로이드 UNI의 단발 모습을 3D로 만들어 캡쳐한 듯하다. 서브컬쳐스러운 앨범커버만큼 음악 또한 보카로 장르의 사운드가 돋보인다. 음높이에 따라 왜곡되는 보컬, 물리적으로 부르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속도의 보컬이나 음의 진행, 전자누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일렉트로닉 베이스의 사운드. 이 앨범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로 가득 차 있다거나 듣도보도 못한 사운드가 강점으로 빛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앨범에는 ‘깔끔한 비빔밥’의 매력이 있다.
간혹 마이너 장르에서 음악은 그 장르가 갖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는 대신에, 복잡하고 딥한 모습으로 단골 리스너들의 입맛을 자극하려는 경향을 가지곤 한다. 직접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대신 프로듀싱이 위주가 되는 보컬로이드(또는, 보카로P) 장르에서는 더욱 빈번하다. 이런 경우 음악은 음악가의 주제의식보다 창작자의 장르적 이해성이나 기교, 또는 음악적 시도를 더 큰 비중으로 담게 되는데, 이런 경향이 결코 나쁜 경향은 아니지만 타 장르의 리스너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음악의 이해가 선행되도록 만드는 장벽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그 장르가 갖는 틀에서 깊어지지 않고 그 매력을 미니멀하게 담는 방향으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경우에도 담아야 할 것들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서 슴슴하고 얕은 매력만을 갖는 경우도 있고, 이지리스닝으로 듣기 좋으면서 스트레스도 덜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아가 때로는, 장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정수’와도 같은 매력을 음악에 녹여내고, 여남은 공간에 다른 매력과 음악가의 주제의식까지 빽빽하게 담아내는 경우도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칸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와 같은 앨범이 이 쪽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반적인 음악의 재미와 변태같은 디테일까지 한 트랙에 담기면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는 명반이 탄생하기 좋은 경우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구사의 Good Morning도 이런 경우로, 일부 진부하게 느껴지는 구성이나 사운드를 포함하더라도 듣는 사람을 신나게 할 줄 아는 음악적 재미와 보컬로이드로만 가능한 여러 장치들, 독특한 시도와 ‘바보’를 예찬하는 구사의 주제의식까지 자연스럽게 섞여 ‘맛있는 비빔밥’처럼 든든한 맛이 난다.
함께 언급하고 싶은 음악가는 현대 전자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이펙스 트윈과, 90년대 중후반 에이펙스 트윈과 함께 워프 레코즈에 소속돼 있었던 스퀘어푸셔다. 에이펙스 트윈의 대표적인 매력은 서정적이고 느긋한 일렉트로닉 멜로디와 계속 변주되면서 속도감있게 진행되는 복잡한 드럼 비트에 있다고 생각하고, 스퀘어푸셔 또한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아날로그적 색채가 묻어난다는 점을 제외하면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Good Morning의 2번 트랙으로 삽입된 ‘꿀과 벌’이 특히 유사한 사운드를 갖는데, 보컬로이드의 보컬 또한 전자악기라고 생각하면 서정적인 일렉트로닉 멜로디와 복잡하게 변주되는 드럼 비트라는 뚜렷한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3번 트랙 ‘세발자전거’에서는 드럼 비트의 톤이나 속도감이 스퀘어푸셔와 조금 더 유사하게 들리는데, 이런 유사함은 1번 트랙 ‘Good Morning’에서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단순한 정박 비트와 복잡한 일렉트로닉 멜로디로 변주된다. 물론 이런 특징이 앨범 전체에서 공유되는 것은 아니다. 5번 트랙 ‘Escape from Easter Blue’는 테크노 사운드의 매력이, 이어지는 6번 트랙 ‘섬마을’에서는 몽환적인 사운드가 빛나고 7번 트랙 ‘고시원에는 해가 뜨지 않는다’는 우울한 가사와 희망찬 사운드가 버무려지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구사는 앨범 전반에 바보를 향한 개인적인 찬양을 담았다고 이야기했다는데, 보컬로이드 특유의 ‘인간적이지 않고’ 어색한 보컬, 직관적이고 엉뚱한 사운드의 선택은 구사가 일명 바보찬양을 텍스트가 아닌 음악으로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리. 이 앨범은 씹덕예술인가, 고급예술인가? 편가르기를 하려는 의도는 없고 둘 모두에는 각자의 매력이 있다. 물론 그 이전에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포함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뭉뚱그리자면 씹덕예술에는 서브컬쳐 특유의 키치한 매력과 개성이, 고급예술에는 두드러지는 주제의식과 (음악을 한정으로) 좋은 사운드에서 오는 어떤 만족감이 있겠다. 그리고 그 서로다른 매력이 이 앨범에는 모두 담겼다고 생각한다. 졸면서 들어도 즐거운 음악, 열심히 뜯어봐도 즐거운 음악, 음악을 듣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