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fheaven - Sunbather
윈스턴 처칠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동시에 비판하기 위해 Extremes meet라는 표현을 활용했다고 한다.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극단주의가 ‘흉보면서 닮는’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인데, 일반적으로는 ‘극과 극은 통한다’ 정도로 활용되는 서양의 격언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정말로 통한다, 긍정적인 의미로 말이다. 극과 극이 통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접해 왔다. 유명한 건축에는 깊은 철학이 포함되고, 음악의 계보는 예술의 계보와 닮았고, 수학을 잘하는 놈들이 이상하게 영어도 잘한다. 서로 다른 분야들을 지구의 여러 나라들로 비유해 생각한다면, 어떤 나라에서 시작해도 열심히 북쪽으로 걷다 보면 모두 북극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 한 문제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해 본 사람이라면 - 다른 분야가 가진 전혀 다른 문제에 쉽게 공감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닮았느냐, 극과 극이 통한다고 해서 극과 극이 닮았다고 할 수 있느냐, 이 말은 조금 어색하게 들린다. 아무리 그래도 수학과 영어가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자신의 발등만 쳐다보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슈게이즈’ 장르와 얼굴에 까만 먹칠을 한 채 악마를 숭배하며 목을 긁는 ‘블랙메탈’은 전혀 닮은 구석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놀랍게도, 데프헤븐Deafheaven은 블랙메탈과 슈게이즈가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훌륭하게 융합한 음반들을 선보였다. 블랙게이즈Blackgaze라는 새 지류를 만들어 낸 데프헤븐의 2013년 앨범, Sunbather다.
블랙메탈 장르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블랙메탈 장르는 사악하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아주 사악하다. 록 장르 중에서도 강렬한 사운드를 가진 장르를 하드록이라고 부르고, 하드록 중에서도 귀에 파상풍이 걸릴 듯한 장르를 헤비메탈이라고, 헤비메탈 중에서도 극단적인 분파를 익스트림 메탈이라고 부른다. 블랙메탈 장르는 그런 익스트림 메탈의 하위 분류인데, 찢어질 듯한 비명으로 악마와 저주를 숭배하는 장르다. 이 특유의 창법은 브루탈 창법이라고 불리는데, 집중하고 들어도 가사가 잘 들리지 않고 대충 ‘샤샤샤샤샤, 샤샤, 샤샤샤샤’ 하는 식으로 들린다. 어둠의 트와이스, 악마를 만나느라 샤샤샤, 그런 느낌이다.
그런 만큼 블랙메탈은 인기보다도 악명이 더 높다. 음악에서 가장 입문하기 어려운 장르를 말하라면 재즈와 블랙메탈을 고르겠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스터드(징)이 박힌 옷을 입고 검은색/흰색으로 칠한 판다같은 얼굴의 락 밴드가 대부분 블랙메탈 밴드인데, 그런 사람들 백을 모으면 전부 유사하게 보이겠지만 전부 다른 분류의 블랙메탈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메탈 안에서도 정통블랙메탈, 퍼스트 웨이브, DSBM (BDSM 아닙니다), 패스트 블랙메탈, 로우 블랙메탈, 심포틱 블랙 메탈, 멜로닉, 인더스트리얼, 포크, 크리스천(?), 아방가르드, 데스코어, 블랙/메탈, 블랙/둠, 블래큰드 크러스트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나뉘는데, 이 구체적인 음악 분류가 다시 이렇게 광활하게 분리된다는 건 정말이지 경이로운 수준이다.
그럼에도 블랙메탈 장르의 공통적인 형식 자체는 꽤나 단순한 편이다. 하나의 음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트레몰로 주법의 기타, 속도조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짐승같은 드러밍, 신세대의 분신사바를 노래하는 보컬…. 기술적으로 입문하기 쉽고, 아무 장비나 대충 주워 써도 여기서는 나쁜 음질도 사악함으로 포장되기 쉽기 때문에 자신의 방이나 차고에서 유사-블랙메탈을 우후죽순 뽑아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를 ‘방구석 똥블랙’이라고 따로 칭하는 유행어가 생겨날 정도로 마이너한 분야 중에서는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악마, 살인, 우울, 자살 등의 요소를 일종의 기믹으로 삼는 만큼 정말로 사악한 아티스트들도 더러 있어 교회나 묘지를 불태우기도, 다른 밴드에 테러를 일삼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앳모스피어릭 블랙 메탈 장르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원맨밴드 버줌의 바르그 비케르네스는 자신을 블랙메탈로 이끌어주었던 동료이자 메이햄의 리더 유로니무스를 무참히 살해하기도 했다. 마약을 했을 때의 몽롱한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 사이키델릭 장르가 초반에는 ‘뽕쟁이들의 음악’이라는 오명을 썼으나 대부분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들이 마약쟁이는 아닌 것을 고려하자면 당연히 블랙메탈 장르 또한 무턱대고 반사회적인 그룹으로 치부하면 안되겠지만, 확실히 타 장르에 비해 잡음이 많은 장르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세상에는 슈게이즈라는 이름의 장르도 있다. 마이너한 장르라는 점이나 주로 락 음악의 하위 장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블랙메탈과의 거리는 '스타워즈'와 '프렌즈'의 거리만큼이나 먼 편이다. 그래도 마이너하다,는 점 하나만큼은 태동기의 슈게이즈 장르도 대단한 편이었는데, ‘빅뱅 이론’이라는 이름의 어원이 최초에 이름이 없었던 프리드만의 이론을 비웃기 위해, 반대진영인 정상우주론을 지지하던 프레드 호일이 라디오에서 ‘꽈광(Big-bang)이론 ㅋㅋ’하고 언급한 데에서 유래한 것처럼 슈게이즈 장르도 라이브 공연 중에 바닥만 보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비웃고자 타 락밴드와 라디오가 언급한 데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음악적 왕따를 당한 셈이다. 슈게이즈 장르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몽환적인 가사, 꿈을 꾸는 듯한 사운드를 특징을 갖는다는 점에서 은하수를 건너는 기차를 생각하면 얼추 유사한 이미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기차의 찰찰거리는 노면소음, 무심한 듯 노래를 부르는 상선밴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슈게이즈 밴드를 찾자면 Apocalypse, K 등의 트랙으로 유명한 Cigarette after sex라는 밴드가 있지만 이 밴드는 엄밀하게는 슈게이즈 보다는 슈게이즈의 파생장르인 누게이즈나 드림팝에 더 가깝다. 정통 슈게이징으로 한정하자면 일명 '음잘알'들 사이에서 아이돌의 지위를 가지고, 음악 평론 사이트의 필진에 따라 20세기 최고의 명반으로도 언급되는 My Bloody Valentine 의 Loveless 앨범이 유명하다. Loveless 앨범을 들어보면 보컬의 목소리만큼 크게 들리는 잡음(노이즈)와 힘이 없는 목소리가 느껴진다. 마이크를 살 돈이 없어서 투지폰으로 녹음을 했나 싶을 정도의 노이즈. 사실 슈게이즈 장르는 노이즈팝에서 파생이 된 만큼 잡음을 커다란 정체성으로 지닌다. 당시는 젊은이들의 고충이 심했던 시대였고, 슈게이즈의 노이즈와 현실과는 동떨어진 몽롱한 가사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도피처였다. 오늘날 방황하는 젊은 세대가 노이즈캔슬링으로 도망쳐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당시의 젊은이들은 주변 소음을 잠재우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노이즈인헨싱을 활용한 셈이다. 90년대에 반짝 인기를 끌고 사장되었던 슈게이즈 장르는 실제로 2010년대에 이르러 다시 사랑받기 시작했는데, 아마 그 당시의 젊은 세대를 위한 낡은 도피처에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대를 초월한 공감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데프헤븐은 이런 서로 다른 두 장르, 블랙메탈과 슈게이즈 장르의 유사점을 찾아냈다. 사람이 갖는 우울한, 부정적인 감정을 터뜨리는 방식이 있다면, 그건 파괴적인 방식이거나 아주 힘없는 방식일 것이라는 점. 어쨌든 두 표현방법은 모두 부정적인 감정의 극단적인 표출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블랙메탈은 우울함과 분노를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사운드로 표출하고 슈게이즈는 우울함과 분노를 힘이 빠지고 노이즈가 가득한 나른한 노스텔지아틱 사운드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데프헤븐은 슈게이즈 장르에 일종의 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따라서 음악적 장치 또한, 일견 정반대의 것으로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을 차용해 혼합하더라도 어색함이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블랙-게이즈라는 이름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랙게이즈는 블랙메탈 특유의 헤비한 음악적 특징을 유지한 채로 슈게이즈 특유의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를 얹었다. 이 지류의 시작인 Sunbather에서 앨범명과 동명인 3번 트랙 Sunbather의 가사를 예시로 보자면 이렇다. ‘샤샤샤, 샤샤샤샤샤, 샤샤 (지금은 새벽 5시이고 모든 지나가는 순간마다 내 마음속 꽃이 피어.)’ 개인적으로는 전설적인 앨범으로 평가되는 전술한 2013년의 2집 앨범 Sunbather 보다는 4집 Ordinary Corrupt Human Love 와 올해인 2025년 3월에 발매된 6집 Lonely People With Power 를 더 좋았다. 블랙메탈의 성격을 팍 죽인 5집 Infinite Granite 도 좋았다. 그럼 나는 블랙메탈보다는 슈게이징을 더 좋아하는 건가? 아무튼, 데프헤븐의 음악을 듣다 보면 죽음과 부패의 예술가지만 얼핏 멜랑콜리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데미안 허스트가 떠오른다. 누군가 동의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한 맥락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블랙게이즈의 첫인상이 괴식을 마주했을 때의 그것과 유사한 것 것처럼,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힙합과 재즈의 융합 또한 과거에는 자연스럽지 않았을 수 있다. 처음으로 힙합과 재즈를 융합해 단숨에 거물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 Guru의 Jazzmatazz, Vol. 1에서 왜 힙합과 재즈에는 공통점이 있는지, 왜 두 장르를 합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수록된 1번 트랙 ‘introduction’과 함께 들으면 Sunbather도 한결 익숙하게 들린다.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