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안젤로와 디종
2025년 10월 14일, 가장 위대한 R&B 아티스트 중 하나이자 네오 소울의 개척자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 온 디안젤로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사인은 췌장암, 향년 51세로 앨범 준비에 매진 중이라던 마지막 소식 이후의 갑작스러운 부고였다. 그 날은 전날보다 조금 따뜻했고 조금 비가 내렸다.
필자가 디안젤로를 접한 것은 순전히 친형 덕분이었다. 1995년 Brown Sugar 앨범을 통해 정식으로 데뷔한 디안젤로는 5년 뒤인 2000년 두 번째 앨범인 Voodoo를 발매했다. Voodoo는 발매되자 마자 빌보드에서 1위를 기록했고, 네오 소울 장르의 클래식,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상,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중 28위 등 전설적인 기록들을 만들어냈다. 한 가지 문제는 Voodoo의 최고 히트곡 Untitled에서 디안젤로가 까만 바탕에 누드로 등장한 것이 의도치 않게 그를 섹스 심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디안젤로는 그 점에 큰 회의감을 느꼈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알콜 중독에 마약에도 손을 댔다고 한다. 다양한 법적 문제를 일으키던 그는 2012년 갑작스럽게 세계 투어를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4년 신보 Black Messiah를 발매하게 된다. 14년만의 복귀 앨범이었던 ‘검은 메시아’는 다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R&B 앨범 상 등의 기록을 석권했고, 디안젤로는 자신이 정신적 침체기를 이겨냈음을 당당히 보이며 활동을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다들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음악을 듣기가 훨씬 어려운 환경이었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리버의 미키마우스 모양 MP3는 2007년에 출시되었고, 내가 형과 공유했던 아이리버 T10은 2005년에 출시되었다. 형은 중학교 때부터 (아마 2008년 즈음일 것 같다) 그 작은 기계에 스티비 원더와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넣어 다녔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기라 mp3 파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그 때에는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돈을 내고 다운받는 것을 제외하면 방법을 몰랐으니까. 그 외에도 제임스 모리슨, 에릭 베넷, 제이슨 므라즈와 뮤즈 등 다양한 아티스트의 앨범들이 들어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특히 스티비 원더의 Superstition을 돌려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당시에 형이 방에서 울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폴 아웃 보이의 광팬이었던 친구가 5년반의 복귀 소식을 듣고 울었던가?), 그 때 mp3 에 디안젤로의 앨범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나서 언젠가 형이 디안젤로의 앨범을 들려주면서, 이 사람, 14년만에 복귀 앨범을 냈는데 자신도 이제 알았고, 앨범도 굉장하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후배와 수요일 밤을 새다가 생각이 나서 함께 들었고, 정말로 굉장한 앨범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밤을 새는 수요일마다 ‘수요음감회’라고 장난삼아 서로가 애정하는 음악을 공유해 듣고는 했다. 물론 그 시작이 디안젤로의 Black Messiah와 Brown Sugar 이었으므로 디안젤로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형에게 먼저 전했고 후배에게 그 다음으로 전했다. 이 정도의 전율을 일으키는 음악을 고작 사람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만큼, 그런 사람도 여타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더 이상 앨범을 만들 수 없는’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은 마음으로 그의 앨범 세 개를 정주행했고 겨우 세 개뿐이 되지 않아 너무 짧게 끝났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한편, 하나의 태양이 지고 R&B 에는 새로운 스타가 나타났다. Dijon, 본명은 디종 두에나스, 사실 태양이 진 것보다 디종이 큰 관심을 받게 된 2집 Baby의 발매가 더 이르니, 스타가 나타나고 태양이 진 것이 순서상 옳다. 어쨌건, 디종은 2025년 8월 15일 12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정규 2집 Baby를 발매했고, (피치포크가 절대적인 지표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여기에 피치포크가 올해 발매된 앨범 중 네 번째로 9점 이상의 점수를 매기며 새로운 R&B 및 네오 소울 명반의 탄생을 알렸다. 디안젤로의 2집 Voodoo와 동일하게 9점을 받았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온다.
필자가 Baby를 접한 것이 피치포크의 ‘베스트 뉴 앨범’ 알림 덕분이었다. 생소한 스타일이어서 첫 트랙인 Baby!만 열댓 번은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해체주의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파편화된 샘플링과 그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구성, 디종 특유의 날카로운 보컬에서 처음 느꼈던 감상은 R&B 앨범이라기 보다는 네오-사이키델리아 장르의 새로운 시도로 보인다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기타 멜로디라인의 샘플링은 리버브의 정도 등에 따라 반복적으로 변주되고, 전통적인 사운드로 느껴지는 드럼 비트는 1분 26초에서 사실 축구공이 굴러가는 소리를 잘라내 킥드럼과 스네어드럼으로 구성한 것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의 샘플을 자르고 변형하고 변주시켜 반복되는 1부를 지나, 1분 45초에서부터 시작되는 2부는 등장했던 샘플을 거꾸로 재생시켜 출산을 기다리는 복잡하고도 기대되는 감정으로 표현되고, 2분 30초의 ‘Here comes your baby’와 함께 다시 샘플들은 역재생되기도 정재생되기도 하면서 아이를 얻게 된 디종의 극적으로 휘몰아치는 감정을 대변한다. 이렇게 해체되고 재조합되는 샘플들은 네오-사이키델리아 장르에서 몽환적이고 가득찬 사운드를 표현하기 위해 샘플들을 다양한 레이어로 나누어 재배치하는 일부 시도와 유사하게 느껴졌다. 기존 네오-사이키델리아 장르의 시도 대부분이 공간감을 위한 레이어링으로 악기를 파편화시켰다면, 디종은 여기에 더해 샘플을 역재생하기도, 더 작게 나누기도 하면서 다양한 질감까지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어쩌면 단지 내가 음악을 덜 들어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간 이 새로운 사운드로 월요일 새벽을 완전히 날려버리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치는 스타의 탄생을 나도 얼핏 느낀 것이 아닐까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이런 글은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장르의 구별 없이 음악을 듣다 보니 아는 장르가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하나뿐이 다 잘 알지 못하는 장르들인데, 재미로 논하자면 무례한 일이 아닐까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니까 재미로 대하자,고 하기에는 단순한 재미 그 이상의 감상을 논하고 싶을 때도 있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하는, 대충 아는체 하고 대충 즐기는 체 하는 염치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음악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결국 이런 것들이 아닐까. 더 듣지 못해 아쉽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해가 지고, 별이 뜬다. 미숙한 경험으로 판단하려는 건방진 마음을 내려놓고서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온종일 하늘을 쳐다보길 즐기는 사람이 표현해야 하는 감사함으로. 다시 한 번 이 글을 빌어 디안젤로의 명복을 빈다.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