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untry, New Road
동네 골목에 수제버거 맛집이 있습니다. 제 2의 ‘인앤아웃’이 되겠다는 간판을 펼쳐놓고 장사를 시작했는데, 정말로 맛이 기막힌 덕에 전 세계에 단골들을 거느린 거물 버거집이 되었습니다.
쉐프, 매니저, 직원들까지 초창기의 인원들 그대로 유지가 되다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신메뉴 개발을 앞두고 쉐프가 돌연 탈퇴를 발표합니다. 이유는 정신적 부담감. 신메뉴는 대흥행에 성공했지만, 셰프는 탈퇴했습니다. 그럼에도 가게는 굴러가야 합니다. 더욱 인기가 많아진 가게를 잡음 없이 운영해야 하고, 또 다른 신메뉴도 개발해야 하니까요.
따라서 수제버거 맛집은, 일식 전문인 매니저를 포함한 세 명의 기존 직원들을 쉐프로 삼아 활동을 계속 이어갑니다. 캐셔, 홀서비스, 매니저의 회 칼 솜씨와 함께 이제 가게는 또 다른 신메뉴를 준비합니다. 새로운 버거 메뉴는 밥(샤리)를 패티로, 회(네타)를 번으로 재해석한 현대적인 스시버거.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단골들은 스시버거를 먹고, 다시 환호합니다. 수제버거 맛집이 인기 초밥집으로 변모하는 순간입니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올해 4월, 이런 신기한 비유가 가능한 예시가 음악계에 있었다. ‘Black Country, New Road (이하 BCNR)’의 3집 Forever Howlong이다.
BCNR은 제 2의 ‘Arcade Fire’가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너버즈 컨디션즈’의 후신으로 시작된 밴드였다. 2021년에 발매된 첫 정규 앨범인 For the First Time 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2022년에 발매된 두 번째 정규 앨범인 Ants from Up There은 영국의 유명 신문사(인디펜던트Independent)와 평론지(뉴 뮤지컬 익스프레스NME)에서 만점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명반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특히 2집 Ants from Up There은 발매 당시, 소위 ‘리스너’들이 자유롭게 앨범을 평가할 수 있는 음악 리뷰 플랫폼 Rate Your Music에서 2020년대 발매 앨범 중 1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이런 성공적인 초반 커리어와 함께 BCNR은 단숨에 컬트적인 인기를 끄는 세계적 밴드로 급부상한다.
하지만 ‘너버즈 컨디션즈’부터 함께 활동했던 메인 보컬 아이작 우드Isaac Wood는 2집의 발매 직전 정신적 부담감을 문제로 BCNR에서 탈퇴를 결정한다. 2집은 성공했지만 밴드의 프런트맨이자 메인보컬이 탈퇴했고, 그에 따라 2집의 발매와 함께 예고되어 있던 월드투어 또한 취소되었으니, BCNR은 시대적 명반의 발매와 함께 밴드의 재구성을 준비해야 하는 극적인 상황에 놓인다.
그렇게 BCNR은 2집이 발매되었던 2022년부터 3년간 재구성의 기간을 가지고, 드디어 2025년 4월, 3집 정규앨범인 Forever Howlong을 발매한다. 밴드를 갈무한 BCNR은 탈퇴한 아이작 우드와 유사한 스타일의 보컬을 영입하는 대신에 밴드의 악기 연주자인 여성 멤버 3명을 보컬로 내세웠다. 기존의 거칠고 감정적인 남성 보컬 음악에서 유하고 서정적인 세 명의 여성 보컬 음악으로 거대한 변화를 꾀한 것이다. 세 여성 보컬들은 베이스 연주자(타일러 하이드Tyler Hyde), 바이올린 연주자(조지아 앨러리Georgia Ellery), 그리고 키보드 연주자(메이 커쇼May Kershaw)로, 앨범에 수록된 11개 트랙을 나누어 불렀다. 새로운 체재로의 변화와 함께 BCNR은 기존의 풍성한 사운드와 ‘뮤지컬스러운’ 정체성은 이어가면서도 차가웠던 감정적 색채는 포근한 따뜻함으로 변모시킨다. 1집과 2집을 통해 불안하고도 격동적인 - 소리지르는 듯한 - 보컬 사운드을 강점으로 가졌던 BCNR의 음악 스타일은 성당에서 들릴 법한 따뜻하고 안정감 드는 음악 스타일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위의 과장된 수제버거 맛집 예시와 비교하자면 물론 무시하지 못할 차이점이 있다. (1) BCNR은 제 2의 Arcade Fire가 되겠다고 이야기한 것과 같이 원래부터 챔버팝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다만 아이작의 탈퇴 전까지는 1986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포스트 록 밴드 Slint의 스타일과 의도치 않게 더 유사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수제버거 맛집이 새우버거 맛집이 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2) 보컬과는 동떨어진 세 명의 악기 연주자가 보컬을 맡아 전화위복의 대박을 친 것처럼 설명했지만, 세 명 모두 '원래 보컬도 잘 하는 멤버들'이었다. 키보드 연주자 조지아 앨러리는 BCNR의 2집이 발매된 2022년에 Jockstrap의 보컬로 데뷔 정규를 발매하기도 했으며, 해당 앨범 또한 NME에서 만점을 받는 등 보컬로서 이미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아이작 우드의 탈퇴 이후 프론트맨이 된 타일러 하이드와 키보드를 맡은 메이 커쇼 또한 밴드의 결성 때부터 배킹 보컬(backing vocal)을 겸하고 있었으니, 이미 보컬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던 셈이다. (3) 또한, 2집이 발매된 2022년과 3집이 발매된 2025년 사이에 BCNR은 아무런 대외적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고, 라이브 공연을 위해 작곡된 미발매곡을 모아 만든 콘서트 영화이자 라이브 앨범, 말하자면 2.5집에 해당되는 ‘Live at Bush Hall(https://youtu.be/VbHV8oObR54)’ 을 2023년에 발매했다. 아이작과의 마지막 작업물들에 매듭을 지으면서도 밴드의 새로운 구성이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팬들에게 확인시키는 행보였다.
https://youtu.be/TK8m1g_ZggE?si=lM7BjQdQHiEQTGaR
Forever Howlong 앨범의 10번 동명 트랙 Forever Howlong은 관악기들이 메이 커쇼의 보컬을 가볍게 받치는 단순한 구조의 트랙이다. 곡의 시작부터 2분까지는 리코더/플룻/클라리넷으로 구성된 관악기들이 메이 커쇼와 같은 멜로디를 동시에 진행시키며 단순하고 여백이 있는 사운드를 이끈다. 그 이후부터 관악기들은 조금 더 자율성을 갖고 메이 커쇼의 멜로디를 뒷받침하기도 화음을 맞추거나 박자를 조금씩 밀고 당기기도 하면서, 마치 메이 커쇼를 따르는 자그마하고 다양한 새들처럼 여유롭게 발걸음을 내딛는 메이 커쇼의 주변을 재잘거리며 맴도는 사운드로 변주된다. 이런 정제된 자유로움과 일관된 가벼움으로 진행되는 음악은 3분을 기점으로 갑작스러운 클라이막스로 치닫는데, 메이 커쇼의 발성이 '팝'에서 성가대적인 느낌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리고, 재잘거리던 관악기들은 각자가 일순 끊어진 음을 내면서 오르간의 파이프들을 모사하기 시작한다. 재잘거림으로 사용되던 관악기들을 그룹으로 묶어 한순간에 오르간의 파이프관 사운드처럼 구성하는 일종의 '착시' 또는 '착청' 방식, 그리고 메이 커쇼의 성악 발성과 함께 음악의 국면을 성스러운 사운드로 전환시키는 이러한 접근은 정말이지 기발하다. 어떤 면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더불어, Forever Howlong에 뮤지컬이나 연극 음악과 유사점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뮤지컬에서 노래는 가장 중요한 스토리의 진행이나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서술하는 역할로 기능하는 때가 많으나, 그 길이는 일반적인 노래와 같이 3분 남짓으로 짧다. 따라서 음악의 텐션, 멜로디, 분위기 또한 이야기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서 빠르게 바뀌게 되는데, Forever Howlong 트랙 또한 (물론 이 앨범의 다른 트랙에서도) 이런 성격을 차용했다는 듯이 유쾌하게 다양한 멜로디로 텐션을 밀거나 당겨 곡이 마치 '챔버 뮤지컬'처럼 들린다. 여기에 기인하는 듯한 독특한 생동감은 물론 전작인 Ants from Up There의 ‘The place where he inserted the blade’와 첫작인 For the First Time의 ‘Sunglassess’에서도 얼핏 느껴졌던 익숙한 생동감이지만, 3집 Forever Howlong이 보여주는 ‘성숙함’을 통한 생동감은 이전의 예시들에서 격정적이고 날카로운 사운드로 빚어낸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2집까지 BCNR이 소리지르는 듯한 보컬, 강렬한 색소폰, 빈 공간 없이 사운드를 꽉꽉 채우며 고양감을 펼쳐냈다면 3집은 그와 정반대의 '덜어내기'를 통해 동일한 목표를 실현시킨 셈이다. 2집보다는 낮은 평가를 받았고 일부 웹진에서는 ‘안정적인 밴드의 재구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가를 내렸지만, 누군가 나에게 올해의 베스트 앨범을 꼽으라면 고민없이 이 3집 앨범을 꼽을 것 같다.
BCNR을 이야기 할 때에는 항상 미국 서부의 노랗게 익은 들판이 연상된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형의 폭스바겐 골프를 타고 버클리에서 요세미티 밸리로 가는 길에, 이상하게도 후진 Fender사의 붙박이 스피커로 BCNR의 2집 앨범을 들었다. 불안한 회전초의 절절한 외침을 듣는 기분으로 우리는 방목된 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낮은 언덕들을 달리고 있었다(이 시점에서는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떠오른다). 1번의 intro 트랙부터 10번의 Basketball Shoes까지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감정적 빌드업을 가진 격정적인 2집을 다 듣고 우리는 뜬금없는 고양 상태가 되어버렸고, 그 농도를 천천히 낮추고 싶어서 Arcade Fire의 Funeral로 넘어갔는데 어딘가 매끄럽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이 있어 1번 트랙만 듣고는 Car Seat Headrest의 Twin Fantasy 앨범으로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 앨범이 모두 끝날 때까지도 노을빛 들판들의 파도타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께 듣기 좋은 앨범은 역시나 Arcade Fire의 Funeral, 특히 1번 트랙 ‘Neighborhood #1 (Tunnels)’와 타이틀 트랙인 7번 ‘Wake Up’이다. BCNR이 초기의 지향점으로 삼은 밴드라는 연결점도 있지만, 그 짜다는 피치포크가 2004년 발매된 전체 앨범 중 9.7점이라는 최고점의 점수를 주고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우리가 마침내 도착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될 뿐이다’는 명필의 평가를 내렸다는 점부터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조금 더 BCNR스러운 느낌을 원한다면 Slint의 1991년 앨범 ‘Spiderland’가 있다. 록 음악 역사상의 걸작으로도 평가받는 이 앨범은 BCNR의 1집과 특히 유사하고, 강한 감정선으로 소리지르듯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BCNR 자체의 분위기라기 보다는 탈퇴한 전 보컬 아이작 우드의 성향과 더 가깝게 들린다.
마무리 멘트는 피치포크스럽게. 이러나 저러나, 역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BCNR이 마침내 따뜻한 고장의 성당에 도착해 독특한 찬송가를 불러주고 있다는 점이 위로가 되어주고 있으니까.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