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25년도 최고의 앨범,
Rosalía <LUX>

Rosalía - LUX

by 두리안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시편 51편의 내용을 가사로 옮겨, 1638년 그레고리오 알레고리가 작곡한 성가곡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를 직역하면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편 51편은 참회 기도문이며, 다윗이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바친 기도문을 담는다.


지금은 '미제레레'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유튜브에 검색만 해도 쉽게 들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곡이 너무도 아름다운 나머지 현혹된 신자들이 신을 잊을까 두려워, 이 곡이 시스티나 성당 이외에서 연주되는 것을 교황이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제레레'는 130년 동안, 그것도 오직 성주간(크리스마스 전 주간)에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만 울려퍼졌다. 1년에 단 일주일, 성가대의 '미제레레'를 듣기 위해 바티칸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심지어는 음악을 다시 듣기 위해 성당을 반복해 찾는 이들이 넘쳐났을 정도였다. 그렇게 성당을 반복해 찾은 이중에 한 명이 모차르트의 아버지였고, 그에게 다시 들어보고 싶냐며 천연덕스럽게 '미제레레'의 130년 봉인을 풀어 낸 낸 범인이 14살의 모차르트였다는 점 또한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 당시의 성가곡은 온전히 남성 중심적이었다. 오래된 가톨릭 전통에서 최초의 여성 하와는 최초의 남성인 아담을 죄의 구렁텅이로 빠뜨렸으므로 여성은 '원죄'를 지닌 채 태어난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가대는 모두 소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빈 소년 합창단과 같은 전통 가톨릭 뿌리의 합창단은 아직도 남자아이로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성가곡은 소프라노부터 베이스까지, 다양한 음역대를 고루 활용했다. 미성의 소년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있었겠지만 성량이 작은 어린아이가 독창까지 하기에는 무리였다. 이런 이유로 등장한 것이 거세한 남성 가수인 '카스트라토'인데,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한 채 신체를 성장시켜 힘찬 성량을 뽑아내기 위해 변성기 전의 소년 가수를 거세시켰고, 이들은 평생동안 아름다운 성가곡들을 노래했다. '미제레레' 또한 그 당시의 높은 음역대 솔로 파트는 카스트라토가 소화했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에 신에 가장 가까이 닿을 수 있는 목소리가 여성의 목소리라면 어떨까. 서로 다른 인간의 언어를 한 문장에 섞어 쓰며, 피와 죽음을, 섹스와 용서를 노래하고, 누구보다 여성스럽고 때로는 남성적이기까지 한 여성의 목소리로 신성을 표현하면 어떨까. 2025년 11월 7일, '지상의 지도를 완성한 후 로잘리아가 하늘에서 직접 목소리를 냈다(Pitchfork 리뷰 中)'는 평가를 받는 앨범이 발매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팝의 형식을 띄지만 클래식 음악의 뼈대인 4악장의 형식으로 구성돼, 14개의 서로 다른 언어로 여성성과 신앙심을 노래하는 앨범, 로잘리아의 <LUX>다.



앨범 커버에서 가장 먼저 엿보이는 것은 그녀의 앨범이 담고 있는 여성성과 신앙심,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둘의 모순이다. 수녀 복장의 여성(로잘리아 본인)은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대신 에로틱하게 자신의 몸을 어루만진다. 새하얀 수녀복은 그녀의 손과 팔의 선을 감추듯 그대로 드러낸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앨범의 6번 트랙 'Berghain'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곡이 웅장한 성가곡 또는 오페라의 형식으로 시작되는 반면, 그 이름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클럽의 성지, 베를린의 테크노 클럽 비역하인(Berghain)에서 따 왔다. 무신론 또는 '자연' 숭배로 알려져 있으며, 뮤비에 성적인 코드를 다수 포함하기도 하는 전설적인 아방가르드 가수 비요크(Björk)가 함께했다는 점 또한 조금은 아이러니다. 다음 트랙인 'La Parla' 은 라따뚜이를 연상시키는 샹숑 풍으로 평이하게 진행되나 '전국구급 바람둥이, 감정의 테러리스트, 세계적인 대재앙'이라며 전 남자를 욕하는 듯한 가사를 아이러니하게 담기도 한다.


물론 '모순'이 앨범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앨범 전반의 음악적 구성은 분명 모순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점들은 이 앨범이 일반적인 '찬송' 코드의 음악들과 궤를 달리하도록 만든다. 앨범 전반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참여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오페라/오케스트라식 구성에 - 말하자면, 서민적인 -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사운드가 섞였다('Porcelana', 'Berghain' 등). 고고하고도 서민적인 사운드에 뒤섞인 14개의 서로 다른 언어들, 뒤섞인 언어들에 다시 뒤섞인 세속적이고(인간적이고) 영적이고 심지어는 영속적인 가사들. 모순형용의 수사법을 따르면서 훌륭히 대비되는 개념들을 뒤섞은 음악, 전위성을 의미하는 '아방가르드'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있을까.


전술한 대로 <LUX>는 전통 클래식의 4악장을 따른다. 보너스 트랙을 포함한 18개의 트랙들이 순차적으로 1악장(First Movement)부터 4악장(Fourth Movement)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각 악장은 음악적으로 완전히 나뉘어 있지는 않지만(예를 들자면, 인터미션을 곡에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악장 별로 주제의 구분감은 분명하게 갖고 있다.

<LUX>의 맨 첫 곡인 'Sexo, Violencia y Llantas(직역하자면 - 섹스, 폭력, 그리고 타이어)'는 <LUX>의 시작을 알리며 앨범의 전체 구성이 지상과 천국의 '두 세계'를 오가며 진행될 것임을 선언한다('그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살 수만 있다면 - 세상을 먼저 사랑하고, 그 후에 신을 사랑하며 - 이 땅을 떠나 천국에 들렀다가 -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로잘리아는 이 선언에서 시작해, 순결로부터 멀어져(1악장), 세상을 먼저 사랑하고(2악장), 신을 사랑한 후에(3악장), 다시 땅으로 돌아온다(4악장). 해당 트랙에서 로잘리아가 설명하는 것처럼, 이 세상이 포함되는 첫 번째 세계는 '섹스와 폭력, 그리고 찢어지는 타이어 소리'가 나는 세계이고, 신을 사랑하고자 떠나는 두 번째 세계는 '눈부신 빛과 비둘기, 성인들, 신의 은총과 그 결실, 심판의 저울'이 있는 세계다. 두 세계를 오가기 위해 로잘리아는 현실의 세속적인 고민들과 분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영적으로 분리시켰다가, 다시 몸과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긴 여행을 떠난다.


일반적인 클래식 4악장 구성에서 1악장은 보통 소나타 형식을 따른다. 첫 선율을 제시하고, 발전시키고, 재현하는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음악적 구성까지 앨범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음악적으로도, 가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로잘리아가 땅으로 다시 돌아오는 4악장은 개념적으로 론도 형식을 따른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따른다'고 이야기하기에는 구속력이 빈약하다. 다만, 전술했듯이 악장의 개념적/주제적 구분 자체는 각 악장에 포함되는 트랙들의 가사에서 충실하게 이뤄진다. 다양한 언어를 넘나들며 로잘리아는 찬송을 부르듯 피, 섹스, 전남친과 용서, 죽음, 운명을 다룬다.

복잡하다. 이해할 수 있는 가사가 언어적 한계에 부딪혀 제약된다는 점에서 더더욱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이 그 이름처럼 빛나는 이유는, 이런 복잡하고도 유기적인 시도들을 청자가 아무런 피로감 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깨끗한 로잘리아의 목소리와 강약의 조절, 편안한 오케스트라풍의 배경과 간간히 뒤섞이는 일렉트로닉적 사운드는 음악을 해석 없이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훌륭한 장치로서 잘 윤활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https://youtu.be/htQBS2Ikz6c?si=7V3AuaRJmNrND34D

<LUX>는 대부분의 음악 평론 사이트에서 호평받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롤링 스톤'은 해당 앨범에 만점을, '더 가디언'과 영국의 유명 웹진 'NME', '인디펜던트'지 또한 만점을 부여했다. 메타크리틱(Metacritic)은 메타스코어 97점(만점은 100점)을 매겼고, 피치포크는 10점 만점에 8.6점으로 해당 앨범을 'Best New Music'란에 올렸다. 'Album of the Year(AOTY)' 에서는 11월 25일 기준 평론가 22명의 점수 평균 93점, 9,175명의 일반 회원 점수 평균 88점으로 평론가와 대중 점수 모두 올해 발매 앨범 1위에 올랐고, 일반 회원이 평가한 접수만을 집계하는 'Rate Your Music(RYM)'에서는 9,466명이 평균 3.79점을 부여하며 올해 발매된 앨범 중 상위 10위를 기록했다(1위는 본 브런치북에서 언급한 바 있는 'Deafheaven'의 'Lonely People With Power'이다). 분명 다수의 의견이 <LUX>를 음악계의 훌륭한 시도이자 결과물로 평가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LUX>를 평작이나 수작 정도로만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물론 있다.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평론가'인 '앤서니 판타노'는 해당 앨범에 7점을 부여했고, 저명한 평론가가 아닌 대중 평가로 넘어오면 이런 평가는 더욱 갈린다. 일반 리스너가 가장 활발하게 참여하는 음악 평론 사이트 중 하나인 RYM에서 명반이라고 불리는 앨범들의 평론이 하나같이 4점을 넘기기 힘든 것만 보아도 그렇다.

8-2.png 25.11.25 기준, 로잘리아 <LUX> 의 평가

같은 앨범에 대한 개인이나 단체의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는 구태여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당연할 듯하다. 감상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며 동일한 기준에서도 가치에 대한 민감도나 가중치에는 개인차가 있다는 것. 하지만 때로는 이런 감상의 차이가 '음알못'이라는 폄하로 무시되기도 한다. '앤서니 판타노'의 <LUX> 평론 영상의 댓글에서도 마찬가지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불과 며칠 전인 11월 20일에 발매된 저스디스의 <LIT>의 평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위 '빠'와 '까'가 서로를 물어뜯는 모습을 빈번하게 발견하게 된다.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들이 음식의 맛을 가지고 서로 죽어라 싸우지 않는 것처럼, 나는 감상에서도 각자의 개인적인 의견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음악 뿐 아니라 예술, 영화, 문학 또한 마찬가지다. 무언가가 긍정적으로던 부정적으로던 '성역'의 반열에 오를 때에 특히 이런 경향이 자주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분명히 주의해야 할 문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또한 앨범을 듣고 가졌던 첫인상은 개인적으로 고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케스트라풍 구성은 전체 앨범에서 평이하게 유지되고, 14개의 언어 중 하나의 언어(영어)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악장마다의 주제를 이해하며 청취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로잘리아도 이를 의도하지는 않았으리라. 14개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음악을 즉시 이해하고 주제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일 테니까. 하지만 지극히 청각적 즐거움만을 음악 감상에서의 최고 미덕으로 꼽는 나에게 로잘리아의 <LUX>은 귀가 행복한 트랙들과, 꽤나 평이한 트랙들로 구성된 하나의 아방가르드 보따리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그 보따리 안에서 분명 음악적으로 새로운 모순형용의 시도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앨범 전체로 보았을 때에 이런 독특한 시도들이 계속 유지되고 있지는 않다. 전술했듯이, 이는 오히려 청자의 피로감을 낮추는 좋은 장치로써 기능하기도 하지만, 아는 것이 적어 남들보다 단순한 자극에 의존하는 나에게는 앨범의 진가까지의 거리가 꽤나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앨범을 리뷰하기 위해 잔인할 정도로 복잡한 그 디테일들을 하나씩 공부하다 보면 제 풀에 나가떨어져 도저히 호평으로 기우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다. 형이상학적 메타포를 잔뜩 활용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이 단 한 줄의 해석 없이도 재미있을 수 있는 것처럼, 이 앨범이 대중과 평론의 마음을 모두 잡아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로잘리아가 노래했던 것처럼, 앨범을 만들던 당시의 로잘리아가 정신적으로 '두 번째 세계'에 넘어가 눈부신 빛과 비둘기, 성인들, 신의 은총이 넘실거리는 세계에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나 전달하고 돌아왔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로잘리아가 이 '첫 번째 세계'에 자신의 음성을 분명히 전달했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그 목소리를 울렸다는 것. 어쩌면 올해 최고의 앨범이 될 지 모를 앨범 - 로잘리아의 <LUX>다.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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