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dalena bay - Imaginal Disk
어느새 2025년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5년은 푸른 뱀의 해였습니다. 아직 기억하고 계신가요?
2024년은 청룡의 해,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였습니다. 10간과 12지가 60년을 최소공배수로 반복되고 있으니, 우리 중 대부분은 푸른 뱀의 해를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합니다. 앞으로 육십년을 더 살 수 있다면 2085년에 푸른 뱀의 해를 다시 볼 수 있겠죠.
아마 그 때에는 올해의 기억을 모두 잊었겠습니다.
올해 송년회 일정이 있으신가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다들 연말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벌써 5년째 연말을 함께 보내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연말 기분에 맞춰 와인 한 병을 마시면서 그 해의 한심한 행동들을 공유하는 친군데, 쌓여가는 나이가 무색하게 한심함만 귀신같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올해는 연구실에서 긴장이 풀려버려 방귀를 분사한 이야기를 공유했고, 방귀를 분사한 부끄러움으로 친구에게 공연한 카톡을 보냈다간 오히려 그 친구의 답장에 맥이 풀려 끅끅대며 웃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답장을 해 줬던 그 친구는 방귀를 뀌고 쪼갠 남자다,해서 저를 방쪼남이라고 불렀는데, 그 친구도 저와 일년을 함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매년 함께 퇴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송년회의 취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장하는 것은 지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매 연말마다 느낍니다.
올해에는 그 친구와 함께 또다른 송년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왕실 분위기의 파티룸을 빌려 격식있는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예정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그 송년회의 끝이 보입니다. 만취해서 파티룸 바닥을 기어다닐 것이 뻔합니다. 사실 저는 이런 것을 연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악 플랫폼을 사용하시나요. 저는 애플뮤직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스포티파이, 다양한 음악 플랫폼에서 2025년을 돌아보는 Recap 이벤트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들은 앨범, 트랙, 장르, 아티스트 등을 줄세우며 한 해를 돌아보는 이벤트입니다. 마찬가지로 음악 평론 사이트에서도 2025년의 Recap을 시작했습니다. 피치포크는 올해의 앨범 순위와 트랙 순위를 발표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올해부터 새로운 시도로 역대 힙합 명반도 소개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 음악과 한글 평론을 좋아하신다면 '온음-대중음악웹진'도 좋습니다. 아쉽게도 온음은 2025년 총결산을 아직 발표하기 전입니다만, 며칠마다 한 번씩 들어가 소식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음악 커뮤니티에서도 간간히 개인적인 올해의 베스트 앨범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끼는 것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저 같은 방구석의 오브제에게도 친밀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올해 제가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은 막달레나 베이의 <Imaginary Disk> 네요. 총 831분, 그러니까 13시간 가량을 들었다는 건데, 일년간 고작 13시간이라니. 더 듣지 못해 아쉽다는 마음입니다. 작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히로미의 <Alive>도 그렇고, 두 앨범 모두 CD로 사서 들은 시간이 더 많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합하면 고작 하루 정도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올해 가장 애정하는 앨범을 들은 시간을 모두 합치면 일 년의 0.3%에 달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큰 숫자는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여담이지만, 막달레나 베이의 <Imaginary Disk> 는 2024년 8월에 발매된 앨범입니다. 올해의 앨범이 아닌데도 올해 가장 많이 들은 앨범이 되었네요. 앨범의 컨셉은 '트루(True)' 라는 외계인이 '상상 디스크(Imaginary disk)'를 이식받고 인간이 되는 내용입니다. 어떤 평론에서는 색다른 시각으로, 진화론에서 원숭이와 인간 사이 공백의 설명을 '머리에 CD를 넣고 단숨에 진화했음'으로 재치있게 표현했다고 읽었던 것 같습니다. 두 인식을 갖고 앨범을 들은 제 개인적인 인상은 이브가 받은 선악과를 '상상 디스크'로 표현했다는 것인데요, 이브에게 선악과를 준 것이 뱀이었고 앨범 커버가 푸른 색이니 '푸른 뱀의 해와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라고 끼워맞출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저는 이 말을 하려고 푸른 뱀의 해 이야기를 시작했답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총 6만분동안 애플뮤직을 애용했네요. 시간으로 따지자면 1,000시간이고, 일로 따지자면 41.7일입니다. 가장 많이 들은 아티스트는 Tame Impala, 가장 많이 들은 트랙은 브런치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Forever Howlong입니다. 아직도 소개하지 못한 Grizzly Bear가 올해 두 번째로 많이 들은 아티스트이자 올해 두 번째로 많이 들은 앨범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디까지나 브런치를 개인적인 감상 저장고로 여기는 만큼 (그렇기에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는 항상 감사한 마음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더 언급하고 싶은 아티스트나 앨범들이 자꾸 눈에 밟힙니다.
올해를 Recap해 볼까요.
저는 바쁜 박사과정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쁘다곤 말했지만 정작 부지런하게 출근하는 직장인 분들에 비하자면, 장소구분 없이 집이나 연구실에서 편하게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으니 실은 한가한 사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음악이 침투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바쁘게 음악도 듣고 있습니다. 수줍게도 올해는 제 자신을 열심히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해라서, 저는 바쁘게 글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이 브런치북 주간 연재도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그런 다짐을 옭아매기 위해서 시작했습니다. 연말의 분위기와 함께 엊그제부터 밤을 샜고 오늘은 맥주도 맛있게 마셨으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새벽 두 시입니다) 브런치북의 취지와는 다르게 말이 맥락없이 둥글어진 점은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저의 올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Throw knapsack over the brick wall'이 될 듯합니다. 직역하자면 배낭을 벽돌담 너머로 던져라,라는 말이고 의역하자면 '목표를 먼저 공언하는 것이 그 목표를 이뤄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일단 '할 수 있다'고 말을 떠벌리고 나면,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노력하게 되니까요. 이미 언급했지만 저에게는 올해 시작한 브런치가 그 공언의 일부였습니다. 브런치 이외에도 다양한 공언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가 다 지날 때까지도 그 공언들은 아직 습관화되지 못했으니까, 저는 벽돌담 너머로 다양한 가방들을 튼튼한 모래주머니처럼 던져 쌓았을 뿐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언젠가 벽돌담 너머로 몸을 던졌을 때에는 그 모래주머니들 덕분에 푹신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이 짧은 영어 문장은 붉은 원숭이의 해인 2016년에 수능을 공부하면서 지문으로 처음 접한 문장입니다. 랜덤한 문제집에서 접한 문장이었을텐데, 거진 10년이 지난 2025년까지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말은 슬슬 벽돌담보다 제가 던져낸 가방들의 탑이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는 의미겠죠. 가끔은 벽돌담보다 더 높아진, 제가 10년간 공언한 말들을 뛰어넘는 일이 더 숨가쁘게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저는 푸른 토끼의 해인 2035년에도 같은 이유로 숨을 고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높이뛰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뛰기 직전까지의 평행한 도움닫기라고 생각하니까요, 아직 점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끄러워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닫기를 내딛기 위해서 열심히 뛰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오늘은 이 글을 읽어주신 모두가 자신의 크로스바를 넘기를 기원해 봅니다. 또는 이미 넘고선 폭신한 매트에 등을 뉘이셨거나, 이미 단상에 올라계실지도요. 여러분의 Recap은 무엇인가요.
또는 아직도 열심히 올해의 무언가를 시도하고 계신가요.
*Some time legends 는 흥미로운 앨범들에 대한 리뷰 모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