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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Aug 16. 2021

요즘 것들이 요즘을 사는 방법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을, 정녕 이해하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



몇 달 전인가, <착취도시, 서울>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쪽방촌을 취재하고 빈곤 비즈니스를 해부한 책이었습니다. 얇은 두께의 책이었지만 작가의 필력과 취재를 향한 집념에 놀랐습니다. 좋은 작가와 글을 만난다는 건 행운입니다. 생각해 보지 않은 인사이트와 마주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의미에서 글빨 좋은 작가는 금세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되어버립니다.


어라, 서점에 작가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책의 제목은 아리송합니다. 다만 책의 표지가 직관적입니다. MZ세대를 설명하는 아이콘들. 표지와 작가의 전작에 대한 기대, 별 수 없죠. 결국 책을 사버렸습니다.






최근 저는 N잡, 비트코인, 부동산 열풍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틈 날 때마다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이야기를 쉼 없이 합니다. 돈을 죄악시하고 속물로 여겼던 저도 요즘은 허겁지겁 제 몫을 챙기기 위해 나름대로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벼락 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요.  


저는 '요즘'을 '비로소 제 삶의 호흡을 찾아가고 있는 때'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코로나 위기 속에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으며 존엄하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었습니다.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내었지만, 어쩐지 제 이야기인 것 같은 이상한 느낌과 격한 공감으로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동이 제한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늘어나고, 자산 가격은 급등하고, 노동의 가치는 폄하되는 세상. 단 1년이라는 급변기에 모든 것이 변해버린 요즘. 유연하고 주체적인 요즘 것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요.


'참 신기한 요즘 애들'로 분류되는 몇몇 행동 양식이 내게는 종종 절규 섞인 고군분투로 느껴진다. 기성세대라 꽉 틀어쥐고 놓지 않는 권력. 경제적, 사회 지위적, 계급적으로 통로가 막혀버린 우리. 구조적으로 활로를 찾을 길이 없다면,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단단하게 꾸려나가겠다는 다짐으로 읽힌다. 기존 질서가 요구하는 '평범성'과 '정상성'에 나를 끼워 맞춰 살지 않겠다는 단호한 목소리. 혹은 으레 주변 사람들이 요구하는 온갖 역할론에 휩쓸리지 않고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선언이라고 해석하면 과한 걸까. (p29)


저자는 미라클모닝을 자기 계발이라는 빈약한 단어로 퉁치는 데에 일갈하며 나의 영역을 침해받지 않고 가꿔가는 시간이라고 설명합니다. 좋은 날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온 우리의 삶은 과잉이라며, 가끔은 생활 속에서 그저 그런 밥을 견디는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대의 풍요를 맘껏 누려온 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환원이라고요. 면생리대와 친환경 주방 비누, 비누열매를 사용합니다.


저는 배달음식을 종종 시켜먹습니다. 한번 시켜먹었을 뿐인데 금세 한켠에 쌓이고 마는 쓰레기들. 혹시나 환경에 도움이 될까 싶어 씻어서 분리배출을 꼭 하지만, 햇반이 other로 분류되는,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였다니요. 아직은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지구에 나의 발자국을 보다 적게 남기기 위해서는요.


 변화된  삶의 모습이 있다면요, 최근 요가를 시작했습니다. 작년 강릉 여행에서 만난 요가와 명상을 즐기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생활을 보다 단단히 지킬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는데, 다른 운동에 비해   맞습니다. 힘든 날에는 술을 마시러 가기보단 빨리 명상을 하러 발걸음을 재촉할 정도니까요. 나라는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서있습니다.


 자산 불평등이 정점을 찍은 지금,  부모에게 많은 부를 물려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거 세대처럼 많은 기회가 열려있지도 않은 우리에게 있어 공평한 건 '시간' 밖에 없다. 가진건 몸뚱이, 아니 시간밖에 없어서 그것이라도 살뜰하게 '시테크'할 수밖에 없다는 염세적인 결론에 매번 닿고 만다. (p50)


요즘 세대는 영화 요약본을 즐겨봅니다.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내게 소개된 썸네일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워서 눌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죠. MZ세대는 요약된 정보에 시간과 관심을 할애합니다. 본인의 시간은 더욱 단축하고, 본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고 맙니다.


짧은 시간 고효율을 내는 것! 저는 그 움직임이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 보다 근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에겐 생각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것을 음미하는 시간보단 매뉴얼을 따르고 사회의 질서에 따르도록 강요된 시간이 더 많았죠. 올바른 것을 생각하는 것, 본인의 관점을 가지는 일은 우리에게 두렵습니다. 그래서 유튜브 속 자의적으로 해석된 야매 뉴스를 보고 본인의 입장을 정하기도 하죠.


이건 정치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지 고민하는, 제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합니다.





실상 요즘 애들이라는 집단 속 한 사람 한 사람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과거처럼 동세대를 한 곳에 응집시키는 '거악'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어떤 악행을 '거악'이라 호명하는 데에도 많은 이가 반대할 것이다. MZ세대가 모두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의제라고 해봐야 대부분 반대의 여지가 없는 '서로 짜증내고 살지 맙시다' '꼰대의 부적절한 행동을 더 이상 묵과하지 맙시다'같은 소소한 구호 따위일 것이다. 혹은 더 이상 뺏길 파이조차 없어 매달릴 수밖에 없는 능력주의 담론이라든가. (p97)


깊이 공감했던 구절. MZ세대는 싸워야 할 대상이 없습니다. 거악보다는 자신들의 삶이 어쩌면 요즘의 투쟁의 대상이 아닐까요. 기성세대가 틀어막고 있는 가치들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얻으려는 힘찬 움직임들.



과거 20~30퍼센트씩 이자를 얹어주던 재형저축을 발판 삼아 목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부모세대가 필요로 한 것은 오로지 '꾸준히 월급이 나오는 근로자의 지위'뿐이었다. 따로 재테크에 골몰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이자가 들어왔고 어느 정도 근면성실함만 있다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물가 역시 현저하게 낮았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이 놓인 현실은 다르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들. 즉 자산, 특히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이 폭등하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면 다행인 급여만으로 우리는 일상도 제대로 영위하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노동 수익으로만 이뤄진 삶이 어떤 위기 상황에서는 몹시 취약하다는 것.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고 다른 삶의 양식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애들이 경제적 자유를 욕망의 최상단에 두고 어떻게든 부를 창출할 새로운 수단을 발굴해내는 까닭이다. (p118)


기성세대와 현세대가 가장 뚜렷하게 구분되는 삶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금리라고 단언하겠습니다. 단언컨대 기성세대처럼 꼬박꼬박 적금 붓고 저축해서 돈 버는 시기는 지나도 한참 지났습니다. 돈을 저축해라, 그렇게 단타 치면 안 된다 등등 기성세대들의 조언보다 '술자리 맨큐'의 말에 더욱 귀를 쫑긋하게 되는 우리들의 삶이란. 이해를 해줘야 합니다 정말. 그 시절과 지금 시대는 다르니까요.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들. 불안정성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 어째 자꾸 무겁고 힘겨운 단어들만 생각나는지. 우리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MZ세대로서 느끼는 점은, 지금 이 시기가 뭔지 저는 모르겠고 집을 사기 위해선 부단히 다른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안정적인 부수입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인가. 잘 정착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회사의 자원과 직업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흡수하며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성장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의외로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배우는 것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것이 오히려 회사에서만 똥을 누는 것보다 '조금도 손해보지 않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왕이면 '행복한 노비'로 사는 것이 이곳저곳에 떠밀리지 않고 나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길인 셈이다.(p169)


제가 명심해야 할 구절입니다. 퇴사가 열풍이라던데.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나이인데 휩쓸리고 싶지 않습니다. 시류이든, 감정이든 말이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담뿍 배우고 싶습니다. 좀 더 너그러운 품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품어내고, 종국엔 그것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념은 세상을 바라보는 낡은 틀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주류적 해석으로 통용된다. 나는 언론사를 비롯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많은 스피커가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렌즈를 구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로 나눠 바라보기엔 너무나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p254)


우리는 자주 진보니 보수니 이념을 강요당합니다. 저만 해도 하나의 당적을 가진 사람이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주제에 맞게. 렌즈를 갈아 끼우기도 합니다. 파란 렌즈로는 파란색을 구별하기 힘들고 빨간 렌즈로는 빨간색을 구별하기 힘드니까요. 의식적으로 다양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더 좋은 브런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마무리하며


요즘 강박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뉴스나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부캐고민을 하고, 인센스 스틱과 향초를 켜놓고 요가나 명상을 하곤 합니다. 가끔은 운동이나 여행처럼 활발하게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시간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어나서기도 하고 SNS 속 또래들은 모두 본인의 생활양식을 가꿔가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저만의 불안함이기도 합니다.


내려놓으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고민의 기저에 있는 핵심을 꼽아보라면 단연 '살 궁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관 달리 낮아진 성공의 문턱들. 내게 닿을 수 것만 같고, 마치 좀만 더 하면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것들, 하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될 것 같은 불안함 속에서 자아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본인을 성찰하는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발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작가는 책 내내 본인의 삶이라고 강조했지만, 어째 제 생활 같기도 합니다. 아등바등 본인의 존엄을 찾아가는 MZ세대에겐 낯설지 않은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한껏 힘주어 살아내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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