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시골 마당에 노란 비닐이 깔렸다.
그 위에 참깨가 널려 있다.
수확이 끝난 뒤, 가장 느린 방식으로 시간을 말리는 중이다.
바람이 지나가고, 햇빛이 머물다 가는 자리에서
참깨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익어간다.
그 마당 한쪽에 모자를 쓴 여인이 서 있다.
말려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존재다.
그 순간,
햇빛이 여인의 몸을 통과해
노란 비닐 위에 그림자를 남긴다.
빛은 색을 바꾸는 재주가 있어
노란 비닐은 붉은색으로 변하고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여인은 나무막대를 들어
말리고 있던 참깨를 살짝 건드린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로
마당 위에는 뜻밖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사람 같기도 하고,
짐승 같기도 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형상이
붉은 바탕 위에 떠오른다.
누가 그리려 한 것도 아니고,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다.
그림은
햇빛과 그림자,
비닐과 참깨,
그리고 우연한 손짓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이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방식의 작품이다.
붓도, 물감도, 캔버스도 없다.
다만
자기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 한 사람이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예술은 반드시
배운 방식으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야만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마당에서 태어난 이 그림처럼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남들이 만든 세계를 흉내 내는 대신
자기만의 빛과
자기만의 그림자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완성된다.
누구도 이름 붙이지 않았지만,
분명 존재했던 한 순간의 작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