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밴쿠버 여행 중의 이야기다.
스탠리파크는 원시림으로 가득하다.
숲길을 걷다 보면
한 그루만 한국으로 옮겨 와도
곧바로 보호수로 지정될 것 같은
거대한 나무들이 사방에 서 있다.
숲은 압도적이다.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을 버틴 나무들이
묵묵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더 걷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모습이다.
아마 강풍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폭우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저 시간의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버티던 나무가
어느 날 조용히
숲 바닥으로 넘어졌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그 나무들을 치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 손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그대로 둔다.
자연이 스스로 하도록 맡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조금 더 놀라운 풍경은
그다음에 나타난다.
쓰러진 나무 위에서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풀과 이끼들이 자리를 잡는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나무 몸통이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사는
‘자연의 아파트’가 된 것처럼 보인다.
울창한 원시림 사이에서
거대한 나무의 사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이 된다.
그래서 숲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눈으로 확인하는
자연의 순환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넘어지지 않으려 애쓴다.
끝까지 버티고
끝까지 서 있으려 하고
결코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되려 한다.
하지만 숲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넘어지는 것은
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어쩌면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이 되는
토양이 될 수도 있다고.
스탠리파크의 숲은
거대한 나무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 위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작은 생명들 때문에
더 장엄하고
더 신비롭게 보였다.
그리고 그 풍경은
회사를 은퇴한
나에게 조용히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서 있는 나무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자라게 하는
넘어진 나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