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부장이 윤아가 되던 날
회사 부장 시절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매년 연말이면 회사 강당에서 송년회가 열렸다.
빠지지 않는 순서는 부서별 장기자랑.
취지는 늘 좋았다. 한 해를 웃으며 마무리하자는 것.
하지만 준비 과정은 웃음과 거리가 멀었다.
누가 나갈 것인가를 두고 눈치를 봤고,
결국 신입이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손을 들곤 했다.
그 장면이 늘 마음에 걸렸다.
즐거워야 할 행사가 누군가에겐 부담이 되는 모습.
초임 부장으로 첫 송년회를 맞던 해,
나는 선언했다.
“우리 부서는 전원 참여. 부장 포함.”
잠시 정적이 흐르다 웃음이 터졌다.
종목은 당시 가장 인기 있던 걸그룹 소녀시대.
‘소원을 말해 봐’와 ‘Gee’를 합친 무대를 준비했다.
문제는 인원.
소녀시대는 9명, 우리는 11명.
나는 슬쩍 빠질 생각을 했다.
“나는 뒤에서 응원할게.”
직원들이 바로 받았다.
“부장님도 해야죠. 11명의 소녀시대로 갑시다.”
그리고 내 역할은 윤아였다.
회사 설립 이후,
부장이 직접 장기자랑 무대에 오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모두 여장을 했다.
타이즈를 신고, 리본을 달고,
거울 앞에서 서로의 화장을 봐주며 웃었다.
그 순간 직급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았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자 강당이 술렁였다.
앞줄에 앉아 있던 사장님이
윤아가 부장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객석에서 “억!” 하는 소리가 터졌다.
지금 생각하면 꽤 아찔한 도전이었다.
행사 후 평가는 둘로 갈렸다.
“채신없다.”
“참신하다.”
나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조직에서 부장의 역할은
권위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날 배웠다.
그 무대 이후
우리 부서의 회의는 부드러워졌고
직원들은 더 자유롭게 의견을 냈다.
조직 문화는 거창한 제도보다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채신을 조금 내려놓는 용기,
그 한 걸음이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문다.
돌아보면 그 무대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과감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변화는
가장 높은 사람이
먼저 내려올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