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두르지 않는 순간에 승부가 난다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2014년 4월,
미국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기.
3-3 동점, 9회 말 투아웃 만루.

한 사람만 물러나면 연장으로 가야 하는 숨 막히는 순간.
타석에는 추신수,
마운드에는 당시 필리스의 마무리 조나단 파펠본.

3 볼 2 스트라이크.
공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관중은 안타를 기대했고,
누군가는 끝내기 홈런을 상상했을 것이다.

6구째.
볼.

화려한 스윙도,
짜릿한 타구음도 없었다.
그는 그저 배트를 멈춘 채 공을 골라냈다.

그리고 조용히 1루로 걸어 나갔다.

그 한 걸음이
경기를 4-3 승리로 끝냈다.

우리는 ‘승리’라 하면
크고 선명한 장면을 떠올린다.
단번에 판을 뒤집는 홈런,
누가 봐도 멋있고 박수가 터지는 순간.

그러나 그날의 승리는
화려함이 아니라 기다림에서 나왔다.
힘이 아니라 절제에서 나왔다.

풀카운트에서 방망이를 휘두르는 건 쉽다.
가만히 서 있는 건 어렵다.

욕심을 참는 것이
가장 공격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이 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눈에 띄는 성취,
큰 성공,
빠른 결과를 원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한 방’을 꿈꾼다.

하지만 삶의 많은 승리는
사실 ‘볼을 골라내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유혹과 조바심을 이겨낸 싸움.

볼넷은 화려하지 않다.
기록지에는 단지 “BB” 한 줄로 남는다.

그러나 그 한 줄이
경기의 흐름을 바꾼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묵묵히 지켜낸 원칙,
조용히 견뎌낸 시간,
아무도 몰라주는 선택들이
어느 날 점수판을 바꾼다.

박수가 터지지 않아도 괜찮다.
눈에 띄지 않아도 괜찮다.

자기만의 선구안으로,
자기만의 기준으로
끝까지 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인생의 9회 말,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대한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