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탄이다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나는 연탄이다

요즘은 나를 찾는 집이 거의 없다.
도시의 겨울은 버튼 하나로 데워지고,
불은 보이지 않는 배관 속을 조용히 흐른다.

그래도 한때는
골목마다 내 냄새가 있었고,
아침이면 계단에 검은 손자국이 남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시절을 기억한다.
잘 나가던 때라고 말하면 좀 우습지만,
연탄에게도 전성기쯤은 있었다.

보시다시피
내 얼굴에는 구멍이 많다.
사람들은 그걸 “숨구멍”이라 부른다.

그럴듯한 이름이다.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나는 한 가지는 안다.
이 구멍들 덕분에
나는 끝까지 뜨겁게 탈 수 있다는 것.

바람이 드나들고,
불길이 스며들고,
속까지 환히 붉어질 수 있다는 것.

나는 연탄치 고는 성격이 좋은 편이다.
조건도 없고, 불평도 없다.
주어진 자리에서
끝까지 타오를 뿐이다.

다만 작은 부탁이 있다면,
나를 태울 때만큼은
제대로 태워달라는 것.

아까워서 불을 줄이거나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태우면
나는 괜히 제 몫을 못 한 연탄이 된 기분이 든다.

연탄에게 그건
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나는 반쯤 타다 멈추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니까.

내가 불타는 동안
누군가는 국을 끓이고,
누군가는 손을 녹이고,
누군가는 이불속으로 파고들며 말한다.

“아, 따뜻하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내 이름이 기억되지 않아도 괜찮다.
모양이 남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원래
기억보다는 온기를 남기는 쪽이니까.

언젠가 나는 다 타고
가벼운 재가 될 것이다.
바람에 흩어지고
누군가의 신발에 밟히기도 하겠지.

그래도 괜찮다.
나를 다 써버린 날이
가장 빛났다는 걸 아니까.

구멍은 많았지만
쓸모도 많았던 존재.
다 타고 나서야
비로소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삶.

생각해 보면
사람도 조금은 연탄 같다.

속이 비어 있어야
무언가가 통하고,
스스로를 태워야
누군가를 데울 수 있다.


그리고 다 타고나면 남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온기라는 사실.

나는 연탄이다.
지금은 조용히 사라져 가지만,
한때 누군가의 겨울을 지켰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