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시상식장에 앉아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음악이 흐르고, 박수가 터진다.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타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말은 참 좋다.
그런데 어딘가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수상자가 여러 명일 때
사회자는 대표 한 사람의 이름과 공적을 또박또박 읽는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
“이하 내용은 같습니다.”
그 순간
나머지 이름들은
한 문장 속으로 조용히 접혀 버린다.
물론 이해는 한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절차의 효율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의 주인공은
상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상을 받는 사람이다.
박수를 치는 우리는 ‘객’이고,
상을 건네는 사람도 결국 ‘객’이다.
무대의 중심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시간을 견뎌 낸
그 사람이어야 한다.
어렵게 쌓아 올린 노력의 결이
몇 초짜리 문장으로 묶여
“이하 동일”이라는 말속에 들어갈 때,
그 시간이 너무 쉽게 정리되어 버리는 듯했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장면이 있다.
수상자가 무대 중앙에 선 상을 주는 사람에게
걸어가 상을 받는 모습.
너무 익숙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장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금은 묘하다.
왜 주는 사람이 움직이지 않을까.
왜 주인공이 다가가야 할까.
만약 상을 주는 사람이
수상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상을 건넨다면,
그 장면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당신의 시간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수고를 압니다.”
그 말이
언어가 아니라 몸짓으로 전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이런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원래 그렇게 해 왔으니까.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하지만 사회의 변화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사소해 보이는 절차,
익숙한 형식,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관행을
한 번 더 바라보는 데서
조용히 시작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불러 주는 것.
그가 왜 상을 받는지
짧더라도 진심을 담아 말해 주는 것.
상을 주는 사람이
한 걸음 다가가는 것.
그 작은 차이가
존중의 온도를 바꾼다.
그래야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진짜로 빛난다.
그래야 우리는
그를 부러워하고,
“나도 저 자리에 서고 싶다”는
건강한 욕망을 품는다.
주인공을 높이는 태도.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한 사람의 노력을
‘이하 동일’로 묶지 않는 태도.
어쩌면
조금 더 아름다운 사회는
끝까지 불러 주는
그 한 문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