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 칸 생각

by 한칸생각


영화 라이온킹에서
어른이 된 심바는 한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산다.

과거를 피해 멀리 떠나고,
책임을 내려놓고,
가벼운 삶을 선택한다.

그때 하늘에서
아버지 무파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Remember who you are.”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이 말은
어쩌면 심바에게만 하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명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며 산다.

어느 회사의 누구,
어느 직책의 누구.

명함을 건네는 순간
묘한 일이 일어난다.

말하지 않아도
서열이 정리된다.

직함이 크면 목소리가 커지고
직함이 작으면 태도가 조심스러워진다.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니라
명함을 만난 것 같은 순간들.

그래서
회사를 떠나는 순간
사람들은 묘한 두려움을 느낀다.

명함이 사라지면
나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부른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누구의 아들.

정작
내 이름은
조용히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면
괜히 어깨가 올라가고,

좋은 직업을 얻으면
내가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의 성취를
나의 성취처럼 느끼는
이상한 착각.

하지만
어느 순간
어딘가에서
조용히 묻는 목소리가 들린다.

너는 누구인가.

회사도,
직함도,
관계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라이온킹의 그 한 문장은
오래 남는다.

Remember who you are.

명함이 없어도
직함이 사라져도
누군가의 이름 뒤에 붙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라는 사람이다.

어쩌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은

새로운 역할이 아니라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