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칸 생각
3월 초 어느 오후,
나는 북한산을 올랐다.
공기는 아직 차가웠지만
어딘가에서 봄기운이 느껴졌다.
계곡에는 아직 얼음이 조금 남아 있었고
녹아내린 물이
조용히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한참을 오르던 길에서
나는 작은 봄 하나를 발견했다.
산 강아지 네 마리.
바위와 마른 가지 사이에
각자 다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앉아 있고
누군가는 누워 있고
누군가는 조용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태어난 지
아마 세 달, 네 달쯤 되었을 것이다.
내 인기척에도
도망가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늘 해를 끼치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고
누군가는 먹이를 두고 간다는 것을.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아마 지난겨울에 태어났을 것이다.
가장 추웠던
12월 초쯤.
눈과 바람이 몰아치던 겨울을
이 작은 몸으로 버텨 냈을 것이다.
산은 아름답지만
결코 쉬운 곳이 아니다.
먹을 것도
잠잘 곳도
늘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아렸다.
나는 이름을 몰랐다.
그래서 이름을 부르지는 못하고
그저 웃으며 말했다.
“이이구, 이쁜 것들.”
그 순간
네 마리가 거의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말이
자기들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모습이 좋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그 아이들은 잠시
내 사진의 배경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산을 내려오며
마음 한쪽이 조용히 무거워졌다.
봄은 오고 있었지만
이 아이들의 삶은
여전히 험한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북한산에서
봄을 보았다.
하지만 그 봄은
마냥 따뜻한 봄은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작은 기적이라는 것을
조용히 알려 주는
조금 아린 봄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봄이 가장 반가운 존재는
누구일까.
꽃을 보며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긴 겨울을 견디며
생명이 꺼지지 않도록
버텨 낸 존재들일까.
눈 속에서
배고픔을 견디고
찬 바람 속에서
몸을 웅크리며 살아낸 것들.
그들에게 봄은
풍경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소식일 것이다.
사람들은
봄을 보며 말한다.
“참 아름답다.”
하지만
어쩌면 봄은
아름다움보다 먼저
생존의 계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날
북한산에서 만난 네 마리의 작은 강아지는
나에게
봄이 얼마나 따뜻한 지보다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