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시간들( 2 )

2. 내 인생의 첫 대통령

by 한칸생각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나는 이미 한글을 조금 읽을 줄 알았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자를 모른 채 학교에 들어갔다.
1학년이 되어서야
‘가, 나, 다’를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특별한 선생님이 한 분 있었다.

둘째 누나였다.

누나는
학교에 가서 기죽지 말라며
바쁜 살림 틈틈이 나를 붙들고
초보적인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기교육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1학년 때 반장이 되었다.

어린 나에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일이었다.

그 작은 사건 하나가
내 마음에 이상한 힘을 심어 주었다.

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로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 담임선생님의 얼굴과 이름이 기억난다.

권혜금 선생님.

어느 날
선생님이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아이들이 하나씩 대답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대통령이요.”

선생님은 웃지 않으셨다.
차분하게 이유를 물으셨다.

“왜 대통령이 되고 싶니?”

나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대통령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으니까요.”

선생님은 다시 물으셨다.

“그럼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

나는 잠깐도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과자랑 사탕을
마음껏 먹을 거예요.”

그 시절
과자와 사탕은
아이들에게 쉽게 허락되는 음식이 아니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는 일은
아이들에게 작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는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는 일로
그것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도 웃음이 나셨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끝까지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셨다.

어린 내 꿈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내 뒤에는 늘 누군가의 마음이 있었다.

학교에 가서 기죽지 말라고
한 글자라도 먼저 가르쳐 주던
둘째 누나.

반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없는 살림에도
오일장에서 학급 청소 도구를 사 들고
학교를 찾아오셨던 어머니.

한 아이의 자신감은
혼자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가
“괜찮다.”
“할 수 있다.”

조용히 등을 밀어줄 때
작은 마음 하나가 자신감이 되고
그 자신감이
한 사람의 삶을
조금씩 바꾼다.

어쩌면
내 인생의 첫 대통령은
권혜금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집 둘째 누나와
오일장에 다녀오셨던 어머니였을지도 모른다.

그분들은
한 아이의 세상을
조용히 통치하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