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친구들의 아지트, 나의 공부방
고등학교 시절
나는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싼 방을 구하다 보니
집의 남는 자투리 땅을 활용해
억지로 만들어 놓은 방을 얻게 되었다.
방 모양은 사각형이 아니었다.
거의 삼각형에 가까웠다.
책상을 놓으면
남은 공간은 사람이 겨우 앉을 정도였다.
잠을 잘 때는
대각선으로 누워야 조금 편했다.
그래도 그 방은
그 시절 내 세상의 중심이었다.
자취방은 곧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집에서 학교를 다니던 친구들이
수업이 끝나면
하나둘 내 방으로 모여들었다.
문을 닫고
창문도 닫고
우리는 어른 흉내를 내며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어느 날은
연기가 너무 자욱해서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숨이 막혀 창문을 여는 순간
방 안에 가득했던 연기가
마치 굴뚝 연기처럼
한꺼번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들 속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며
여유 있는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뒤에서 해결해 줄 사람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백업 시스템’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내 뒤에는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내가 잘못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내 인생이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척은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 자취방을 놀이터처럼 사용했다.
대신 올 때마다
무언가 하나씩 들고 왔다.
어떤 날은 음식,
어떤 날은 과자,
어떤 날은 집에서 쓰던 카세트였다.
“야, 음악 들으면서 공부해.”
그렇게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쩌면
‘물품 공급처’ 같은 존재였다.
그 짧은 자유의 시간도
고3이 되면서 끝이 났다.
친구들의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내 방에는
다시 조용한 공부 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그해
나는 좋은 성적을 받아
장학생으로
꿈에 그리던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삼각형 자취방은
참 묘한 공간이었다.
친구들의 일탈이 모이던 곳이면서
내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던 곳.
아마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작은 일탈도
지금은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방에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인생은
넘어져도 다시 일으켜 줄 사람이 있고,
어떤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두 번째 길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