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시간들 ( 8 )

8. 깁스를 스스로 자르던 밤

by 한칸생각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저녁, 친구와 방천뚝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둑해진 길에서 셔틀콕을 쫓아 뛰다가
미처 보지 못한 벽에 그대로 부딪혔다.

왼쪽 팔에 금이 갔다.

근처 수성병원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고 깁스를 했다.

치료는 끝났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주머니에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계산대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원무과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입니다.
지금 돈이 없는데
깁스 풀 때 계산하면 안 될까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통했다.

직원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병원을 나왔다.

한 달쯤 지나자
깁스를 풀 때가 되었다.

하지만 병원에 다시 갈 수는 없었다.
돈이 여전히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톱을 구해
깁스를 조심조심 잘라냈다.

자칭 치료 완료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가끔 왼쪽 팔이
조금 불편하다.

그때 외가댁이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외가도 2남 3녀를 키우느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깁스를 한 팔로는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나는 그때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외숙모가 도시락을 싸고 있었다.

도시락이 하나씩 차례로 놓였다.

외사촌 형, 누나들 것,
그리고 막내 것.

마지막에
내 도시락이 놓였다.

외가 막내는
나보다 어린데
순서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존심이 강했고
아마도 가난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와
외숙모에게 말했다.

“이제 몸이 괜찮은 것 같아요.
자취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외숙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마 모르셨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취직을 하고 형편이 조금 나아졌을 때

문득
그 병원이 떠올랐다.

병원비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갔는데
이미 병원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돈은
아직도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순진한 학생을
믿어 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하지만 마음 어딘가에는
작은 빚처럼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과거의 상처는
현재가 좋으면 추억이 된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시절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잘 견뎠다.”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도
마음속으로 조용히 감사한다.

아마
그들의 작은 믿음이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