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감사가 사라질 때 교만은 시작된다
드디어
간절히 바라던 대학에 입학했다.
옷가지 몇 벌과
사용하던 이불과 베개를
한 보따리로 묶어
고속버스에 올랐다.
지금 같으면
그렇게 부피 큰 짐을 들고
먼 길을 갈 필요가 없다.
서울에 도착해서
필요한 것을 사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는 길,
짐이 너무 커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아마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날 나는
장학생 신분으로
내가 가야 할 곳에
도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내게 주어진 것은 생각보다 컸다.
등록금은 전액 면제였고
매달 생활비도 지원되었다.
거기에 고시반 기숙사까지 제공되었다.
식당에서는
밥과 국, 세 가지 반찬이 나왔다.
가끔은 특식으로 토스트도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식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작은 축제였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천지개벽 같은 변화였다.
나는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정말 감사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처음에는 감격이었던 것이
점점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안정된 생활은
긴장을 풀어 버렸고
보장된 환경은
절박함을 조금씩 지워 갔다.
처음 마음먹었던 꿈도
조금씩 희미해졌다.
어느새 나는
장발 머리에
그 당시 유행하던 파마를 하고
멋을 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사회 불만을 이야기하며 밤을 새웠다.
그리고 그것을
‘멋있는 대학생활’이라고
스스로 포장했다.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차라리 장학생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학교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감사 대신
불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친구들에 대한
이유 없는 우월감도 생겼다.
그리고
서울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는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철저히 숨겼다.
마치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처럼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가짜 정체성을 만들고 있었다.
감사가 무뎌지는 순간
사람은 교만해진다.
그리고 그 교만은
아주 조용히
자신을 속이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대학 초반의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 안에 숨어 있던 간사함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나를 흔들었던 것은
가난이 아니었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교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