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내지 않아도 되는 등록금을 받던 시절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었다.
대도시에 있는 전통 있는 학교였다.
교문을 들어설 때마다
이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자부심이 마음속에 피어났다.
하지만 현실은
그 자부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생활은 늘 빠듯했고,
교복 주머니는 가벼웠으며,
하루하루는
배움보다 먼저 ‘살아내기’와의 싸움이었다.
그러던 중
1학년 2학기부터
등록금 면제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자랑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조용히 감춰야 했다.
이 이야기를 큰형에게 꺼내는 순간,
형이 보내주던 등록금은
끊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내지 않아도 되는 등록금을
나는 여전히 받았고,
그 돈은 고스란히
부족한 생활비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살아야 하니까.”
그 말은
나를 버티게 해주는 이유였지만,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빚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특히 큰형에게는 더 그랬다.
형 또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기에
그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더 철저하게 숨겼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계산과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서글픈 학창 시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애쓰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퇴직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에게 꺼낼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큰형을 떠올리며
늦은 말을 건넨다.
형,
그때는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죄송했습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