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문이 닫히는 순간 열리는 것들
새로운 사장이 취임한 뒤
첫 이사회가 열리던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아침에 출근했다.
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이사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이사회 안건 가운데
내 임기를 종료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겉으로는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자
지켜야 할 자존감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제대로 준비할 시간도 없이
나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입사는
내가 결정한 일이었지만
퇴사는
내 손이 아니라
타인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날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당연하다고 믿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있었다.
때로는
아픔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이
전혀 다른 시간을 열어 주었다.
과거의 동료들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의 소중함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스쳐 지나가던
서울의 풍경 하나하나가
새롭게 아름다워 보였고
오랫동안 무시했던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도
비로소 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많은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잊고 살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시간이었다.
과거에 상처라고 생각했던 일들도
지금은
글의 소재가 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삶은 참 묘하다.
한쪽 문이 닫혀야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문은 대개
우리가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열린다.
지금 나는
이상하리만큼 홀가분하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내 인생,
눈치 보지 말고
얽매이지 말고
이제
마음껏 날아보려 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