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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May 05. 2021

윤한로 시인의 詩 '그냥'

올해 만우절에 출간된 시집. 윤한로 시인의 <그대 나에게 가고, 나 그대에게 오고>(다시문학, 2001). 페북 어느 글에선가 보고 산 그의 시집 두 권 가운데 하나. 눈에 띄는 詩 하나.



콤포스텔라 2


아아

나 같은 새끼도

거기 

갔다 왔네


* '콤포스텔라'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마지막 지점.


그리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낱말 '그냥'이 제목인 또다른 詩 하나. 다음 번엔 그가 2015년에 펴낸 시집 <메추라기 사랑 노래>를 읽어봐야겠다. 윤한로 시인은 30년이 넘는 세월을 안양예고 한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퇴직한 뒤 충북 보은에 산다고 한다. 그냥 적어봤다.


그냥


추적추적, 떡갈나무

잎사귀 가을비 내리고

때로는 엉뚱하게

채석장 가는 협궤 열차 철로변

그 시절 황혼 여인숙에 들고 싶네

허름한 연장 가방 하나

비스듬 어깨에 메곤

숙박부에 조금, 거짓 이름 주소

서툰 글씨 몇 자로 깃들고 싶네

단, 하룻밤만

창턱 모과 물주전자 쟁반 물컵

지저분한 천장에 야광 별 뜨고

값싼 외로움의 장사치들,

허투루들과 함께 묵고 싶네

소멸이 소멸을 어루만져도, 이렇게

끝이 끝을 껴안아도 되는 것인지

되묻고 되물으며, 언뜻 벽 너머 얇은 괴성

나 정처 없는 낱말이, 행간이 되어

흐르고 싶네, 굽돌고 싶네, 잠의 옆구리

추억의 궤짝 그때 황혼 여인숙

낡은 구두 한 켤레로 신세지고 싶네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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