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바시키르 여행기 <31>
이방인인 여행자가 그 도시(동네)를 조금이나마 현지인처럼 느끼려면 심심하고 지루해져야 한다. 다 재미있고 흥미롭다면, 그 도시의 일상이 아닌 특별함만 봤기 때문이다. 일상은 매번 재미있고, 늘상 흥미롭진 않다. 오히려 따분하고 심심할 때가 더 많다.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면 비로소 하나 둘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재미있고 흥미로울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다. 그럴 때 사소한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저 사람들은 동네 친구인가, 직장 동료인가'. '다들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대화에만 집중하는데, 이 곳에선 다 그러한가'.
사소한 물음표(?)들은 심심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쫓기듯 바쁠 때는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길거리를 바라보는 것과, 걸으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동거리가 짧고,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딴 생각이 많이 생겨난다. 나는 시간과 거리의 가성비가 낮을수록 질이 높아지는 여행을 꿈꾼다.
바시키리야의 수도 우파(Ufa)의 쇼핑몰 '라이프스타일센터'에서 주어진 2시간 여의 자유시간은 빡빡한 여행 일정 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무료함을 선사했다. 전날 완행 기차를 타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안팎을 둘러보고 또 둘러보며 시간을 낭비했던 것처럼.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여행, 그게 나의 로망이다. 궤도에서 벗어난 일탈을 꿈꾸며.
※ 이 글은 2018년 6월초 러시아 취재 갔을 때 페이스북에 별도로 남겼던 여행 단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