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기의 음식이야기 - 100% 제주메밀면 <서관면옥>
교대역 부근에 문을 연 평양냉면집 <서관면옥>. 가게 건물 오른편에 있는 큰 아크릴 액자에 새겨진 싯구다. 이 시의 주인공은 다산 정약용. 다산문집 <여유당>전에 실려있단다.
"음식에 관해 많은 글을 남긴 실학자 정약용은 냉면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글을 남겼다. <장난 삼아 서흥 도호부사 임군 성운에게 주다(贈瑞興都護林君性運), 그때 수안 군수와 함께 해주(海州)에 와서 고시관(考試官)을 하고 돌아갔음>이라는 긴 제목의 시에서다.
이 시에는 평안도 냉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몇 구절 등장한다. 그들이 술과 냉면을 먹었던 곳은 서관, 즉 북한의 서해 쪽에 해당하는 평안도와 황해도, 그중에서도 황해도 해주였다.
10월 음력 기준이므로 지금으로 보면 11월, 눈이 내리고 겨울이 시작되자 사람들이 모여 갓 모양의 냄비에 노루고기 전골을 곁들인다. 갓 모양의 냄비는 전립투이거나 신선로일 것이다.
산짐승 가운데 가장 맛있는 노루고기를 저며 먹는 모습은 평양냉면집이면 빠지지 않는 어북쟁반을 연상시킨다. 전립투나 신선로나 어북쟁반이나 모두 국물에 각종 고기와 야채를 넣어 먹는 술자리 음식의 대명사였다. 전골을 먹으며 술을 곁들였음은 자명하다."|박정배의 음식강산
○ 박정배의 음식강산|http://bitly.kr/xPj3
평양냉면의 탄생과 서울의 평양냉면
"서관면옥이라는 상호가 메뉴에 큰 영향을 미쳤죠."
김인복 대표의 설명은 서관면옥의 시그니처 메뉴 가운데 하나인 '어북쟁반'을 콕 짚어 얘기하는 듯하다. 물론 '술국'이 아닌 '술(냉)면' 컨셉트의 '맛박이냉면'도 있지만. 이 냉면은 '경계선 음식'이다. 냉면인가 보면 수육 같고, 수육인가 보면 냉면 같다.
말 그대로 '반면반육(半麵半肉)'이다. 한끼 식사만으로는 아쉽고, 반주 안주를 추가로 시키자니 부담스러울 때 딱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식사로 보면 가격이 센 듯 하지만, 안주로 보면 가성비 갑처럼 보이는 독특한 음식이다.
면은 쓴 메밀과 단 메밀 등 국내산 3종류를 블랜딩해서 제면한다는데 수준급이다. 다만, 육수는 사람마다 선호도 차이가 클텐데, 내 입맛에는 조금 심심했다.
내가 처음 '어북쟁반'을 맛본 건 서울시청 뒤편 '남포면옥'에서다. 어북쟁반은 평안도 음식이다. 어북(飫鍑)'은 편안한 가운데 배부르게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다. 어북쟁반은 얇게 썬 양지머리 고기와 소 젖가슴 부분인 유통을 주재료로 해서 소고기 육수에 끓이는 쟁반 음식이란다.
지금은 가게마다 자기 특성에 맞게 다양한 고기와 전, 채소, 만두, 메밀면 등을 넣는다. 서관면옥 어북쟁반은 한 눈에 봐도 다양하고 푸짐한 고기가 주인공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능이 등 여러가지 고급 버섯이 들어가 국물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김인복 대표가, 일행이 다 모일 때까지 먼저 온 사람들이 먼저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라면서 내온 첫 음식은 '족편'이었다. 청포묵보다 더 투명한 자태로 눈길을 끌었지만, 족편을 올려놓은 굽 있는 아담한 쟁반에 더 눈길이 갔다. 담음새가 예술이었다. 술병도, 그릇도 실제 유명인의 '작품'이었다.
"그릇을 소중하게 살살 다뤄달라"는 김 대표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던 거다. 이날의 마리아주는 시담의 고소리술(29도)과 니모메(11도). 니모네는 귤껍질로 향을 가미한 우리 술이란다. 참, 면에 직접 뿌려 먹었던 '태바시 다시마초'는 식초계의 연두처럼 매력이 있었다.
※ 이 글은 2018년 8월 <서관면옥>이 문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방문한 뒤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