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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Oct 27. 2022

뜨겁고 직설적인 '마왕' 신해철과의 마라톤 인터뷰

100가지 단상|그의 음악세계보다 '인간 신해철'이 훨씬 더 흥미롭다


대학 동기였던 '마왕' 신해철. 난 그의 음악세계보다 인간 신해철이 훨씬 더 흥미롭고 궁금했다. 졸업한 뒤 2002년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그와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간간이 만나 욕을 안주삼아 술잔을 기울였고, 때로는 웃으면서 때로는 화내면서 이따금 전화 통화도 했다.


2009년 4월 그와 3시간 넘게 용산 그의 오피스텔에서 마라톤 인터뷰를 했다. 낯설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마주했다. 늘 그랬지만, 그 당시 신해철은 뜨거웠고 직설적이었다. 주판알을 굴리며 얘기하지 않았다. 날 것 그대로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내가 그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은 '위악(僞惡)'이었다. 해철이는 내 궁금증을 눈치 챘는지 꽤나 긴 답변을 이어나갔다.


8년 전 오늘, 해철이가 세상을 떠났다. 이튿날, 조용히 장례식장에 찾아가 작별의 눈인사를 건넸다. 그런 뒤 근처 코다리집에 가서 해철이의 소주잔에 술을 채워주고 '쨍잔'을 했다… 이렇게 무뎌지니 사람이겠지.




- 일부러 '위악(僞惡)'적으로 나온다는 묘한 느낌도 든다.


"그건 맞다. 나는 대단히 위악적인 캐릭터다. 위악적인 캐릭터는 SBS 라디오 <고스트 스테이션>을 할 때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리고 <고스트 스테이션>에 참가했던 청취자와 모든 관련자들이 다 그 기조를 취했다.


우리는 다 누구였냐면, 반에서 다른 애들 좀 못살게 하는 애들. 그렇다고 때리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그 정도 위악적인 건 아닌데, 순진한 애들 데려다가 '야, 담배 좀 펴봐'로 시작해서 '고삐리면 소주 한 잔은 괜찮아' 정도의 스탠스를 취하는 위악적인 캐릭터들로 다들 행세를 했다.


<고스트 스테이션> 식구들 하고도 그 이야기 많이 했지만, 게시판에 보면 다들 짖궂게 놀고 있는데, 이 애들이 막상 학교에서는 반장, 부반장, 조용하고 말수 없는 애들이다(웃음). 그런데 <고스트 스테이션> 게시판만 들어오면 '니미 씨부랄' 막 이런 사이버 인격상에서의 재밌는 캐릭터를 잡았던 거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너무 위선적으로 착하게 살 것을 강요하지 않느냐.


영국 유학 시절에 클래스라는 개념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인데, 클래스 개념은 확실하고. 그리고 클래스 사이를 이동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동해도 사람들이 칭찬해 주지 않는다.


실제로 집안이 몇 대 내려오는 노동자 집안인데, 아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화이트컬러가 되는 걸 가문의 배신으로 여기는 게 진짜로 존재한다. 그런데 클래스들끼리 유혈 사태는 안 일어난다.


우리나라에는 클래스가 존재할까? 우리나라는 돈으로만 따지는 클래스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혈통에 의한 클래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싸움이 더 많이 벌어진다. 영국은 혈통에 의한 클래스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귀족이 사는 성을 사면 작위가 따라온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실제로 귀족 클래스에 끼어들 수 없다. 나의 정체성을 고민했을 때, 만약 강북에서도 약간 아래쪽에 가까운 미들 클래스 출신이다.


문화적으로는 그렇고, 경제적으로는 미들 클래스에도 편입되기 힘든 상황에서 자랐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영향으로는 문화적으로 대단히 노블 클래스에 가까운 의식을 가지고 짬뽕으로 자랐다. 그렇지만 나는 농담으로도 이야기한다.


나는 '도봉구 미아4동 출신'이라는 지역적인 것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다 통틀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그게 뭐냐?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서 자식들과 밥 먹으면서 '야, 이 새끼야' 정도의 욕은 나오는 문화권에서 자랐다는 거다.


난 유명하지만 상류계급이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상류계급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그걸 못 잡았으니까 상류계급이 아니다. 문화적으로도 록 뮤지션이 상류계급인가? 그거야 말로 노동자 계층의 음악인데.


록 뮤지션이고 도봉구 미아4동 출신인 신해철은 말 하다가 욕 튀어나오고, 비속어 섞여 있고 뭐 상류 계급 사람들이 봤을 때, '저 상스런 놈' 정도의 삶을 사는 게 나도 행복하고 정직한 거 아니겠는가.


그걸 드러내는 과정에서 조금 더 과장해서 더 위악적이 됐다. 나를 실제로 대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사적으로 만나는 신해철이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일 때 굉장한 충격과 실망감을 보인다."




신해철 인터뷰 ①|http://omn.kr/bl5s

신해철 인터뷰 ②|http://omn.kr/fgyk

신해철 인터뷰 ③|http://omn.kr/fg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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