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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기 Apr 02. 2023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 집밥 같은 '식사일기'

서평|윤혜자, 라는 사람. 그의 음식, 그의 책에 관하여


예전에 들었다. '식사 일기'를 쓰고 있고, 1년치가 모이면 단행본으로 펴낼 생각이라고. 드디어 그 책이 나왔다. <부부가 둘 다 잘 먹었습니다>(몽스북, 2023). 3년 전에 출간돼 화제가 됐던, 베스트·스태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몽스북, 2020)와 제목이 깔맞춤이고, 출판사도 같은 곳이다.


책을 사놓고, 머리가 덜 복잡할 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쓴 윤혜자 작가가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책에 사인을 해두었으니 주소를 불러달라는 것. 친한 이가 책을 펴내면 더더욱 내돈내산이 원칙인데, 사인을 해두었다니 고맙게 받았다. 다행히 아직 읽지 않은 새 책은 <부안애서> 김인숙 누님께 선물했다.


추천사와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먼저 읽었다. 그리고 1년치 식사 일기의 주제들을 훑어봤다. 몇 편을 읽어봤다. 옴니버스로 구성돼 있어 눈길 닿는대로, 손길 가는대로 읽어도 되니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야 된다는 부담이 없어 좋았다. 그리고 지금이 제철인 3월과 4월의 음식과 주제는 무엇이었는지도 살펴봤다.   


추천사는 윤혜자 작가의 절친인 요조(뮤지션)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의 저자이자 남편인 편성준 작가가 썼다. 요조의 추천사 중에는 '똑 부러지는 다정함', '매일이라는 가장 어려운 고비'라는 표현이, 편성준의 추천사 중에는 '그는 손도 오지랖도 넓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초→분→시→일→월→년. 점이 선이 되고 면을 만드는 시간의 기록이 1년의 '식사 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로, 입동,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큰 장의 대문 명패를 단 것도 '기획자' 윤혜자다웠다. '제철 식재료'라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음식을 항상 생각하는 그의 음식 철학을 그보다 더 잘 얘기해주는 안내판이 또 있을까. 밥을 짓듯이 글을 지어 담백하고 정갈한 한상 차림을 내놨다.


책을 훑어보다보니, 중간중간 빠진 날짜가 눈에 띄었다. 2021년 10월 14일(목), 10월 19일(화), 11월 27일(토)... 압박감을 갖고 빠짐없이 일수 도장 찍듯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365일을 기록했다면 자칫 숨 막힐 뻔 했다. 그러면 우선 작가가 강박 아닌 강박에 빠질 수도 있고, 그 부자연스러움이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빈틈이 좋았고, 궁금했다.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날에는 무엇을 먹었을까. 굶었나. 내가 아는 한에서는 굶을 사람은 아닌데.  


나도 여러 차례 <성북동 소행성>에 가서 윤혜자가 차려준 '집밥'을 먹어봤다. 때로는 윤혜자·편성준 부부와 밖에서 만나 함께 '외식'을 하기도 했다. 어느 때는 몸보신 시켜준다며 약속시간 몇 시간 전에 경동시장에 가서 가장 잘하는 집에서 초벌 장어구이를 사와 구워주기도 했다.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엄두가 나지 않는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게 내가 느낀 윤혜자의 '똑 부러지는 다정함'이다.


윤혜자는 '호·불호'가 나름 분명한 사람이다. 얼굴 표정을 감추지도 못 한다. 아무하고나 친해지려 하지 않지만, 한번 속을 나눈 친구들에게는 니것, 내것 이해타산을 갖고 따지지 않는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가 아니라 정말 좋아야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숫자만 달라질 뿐, 그날이 그날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 오늘은 일생에서 딱 한 번 있는 날이고,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기에 '함께 먹는 일'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성북동 소행성의 '윤혜자 집밥'이 그립다. 그 음식에 배어있는 사람 냄새가 그립다. 페북에 보니 '금주'를 한다고 해서, 연락을 자제했는데 조만간 만나야겠다. <성북동 소행성>이 아니어도 좋다. 음식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니까. <부부가 둘 다...> 이 책은 제목에 쓰여 있듯이 '둘 다'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무게 잡지 않았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다.


#윤혜자 #편성준 #부부가둘다 #성북동소행성 #음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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