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단상|못난이 농산물
예전에 누군가 그랬다. "'독버섯'이라는 말은 인간의 오만"이라고. 오로지 사람을 기준으로, 먹어서 탈이 나면 다 '독버섯'이라고 낙인 찍으니까. 버섯의 시각에서 본다면, 사람이 먹을 수 없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아야 할까? 존재의 이유가 분명한 버섯을 인간의 오만한 편견에 가둔 셈이라고.
지금도 시골장터에 가면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한 농작물을 좌판 위에 올려놓고 파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인위적인 손길이 덜 간 것은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이다. 이런 걸, 농산물조차 공산품처럼 규격화시켜 파는 대형마트에서 팔면 그게 '뉴스'다. (※ 백종원-정용진의 '못난이 감자' 건이 이를 증명해준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애호박을 보면, 하나같이 라벨링이 된 비닐포장에 붕어빵 틀에서 찍어낸듯 매끈한 자태다. 애호박을 키울 때부터 비닐을 씌워 그 모양대로만 자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애호박에 익숙해지면,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을 닮은 애호박이 낯설고 돌연변이 같아 보인다.
예전에는 감귤도 일정한 크기 이상에다 노란주황색에 껍질은 맨들맨들 윤기가 나야만 상품 취급을 받았다. 그건 착색과 코팅이라는 인공적인 후작업을 거쳤기 때문인데도 그렇다. 착색이나 코팅을 하지 않은, 푸르스름한 빛깔에 껍질 표면이 거친 귤이 더 자연에 가깝다. 오랫동안 그런 귤들은 정상이 아닌 듯하게 여기는 비정상적인 사고에 사로잡혔다.
계절과 온도의 변화에 따른 영향도 있겠지만, 추석 때는 사과나 배와 같은 과일이 크기도 작고 맛도 덜하다. 그런데도 조상님께 올릴 제사 음식이니 크고 보기 좋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소비자는 그런 과일을 연중 가장 비싼 가격에 사야 하고, 생산자는 추석 후에 제대로 맛이 든 과일을 제값에 팔기 어렵다.
참거래농민장터에서 주문한 유기농 당근이 엊그제 도착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울퉁불퉁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수영으로 다져진 몸매처럼 역삼각형의 매끈한 자태를 뽐내는 당근이 아니다. 당연히 마트에서는 외면받고, '주스용'으로 싸게 팔린다. 단지, 자연의 순리대로 자랐다는 이유 때문에. 손질이 번거롭다는 것 빼고는 장점 투성이다. 유기농에, 영양가에, 맛에...
소위 '못난이 당근'을 받고서 가만히 쳐다보니, 새삼 인간의 착시와 편견이 사람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데에서도 뿌리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이런 글을 쓰면서도 '못난이 당근'의 속보다는 겉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참 못났다 . '그건 그렇고, 저걸 언제 다 다듬나...' #2020_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