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17년의 기록
담배를 피우는 것도 유혹이지만 담배를 끊는 것은 더 달콤한 유혹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흡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끊고 싶어 한다. 다만 그 유혹 앞에서 좀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자마자, 순전히 멋이라는 이유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봄꽃이 필 때까지만 피어야지!' 하며 몸을 담배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핑 돌고 헛구역질이 날 때도 있었지만, 하루에 피우는 양은 조금씩 늘어났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니코틴은 몸속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강의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물지 않으면 안 되었고, 담배 연기 사이로 처음 만난 학우들과 나누는 대화는 묘한 친밀감을 만들어 주었다.
봄꽃은 피었고 담배를 끊기는커녕 몸은 점점 담배로 중독이 되어갔다. 담배 냄새는 일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몸에서 풍기는 그 냄새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나는 너무도 쉽게 담배와 함께하는 삶을 받아들였고, 그 시간은 어느덧 스무 해로 늘어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에, 출근해서, 퇴근해서, 밥 먹기 전 후, 영화 보기 전 후, 회의 전 후, 사람을 만나기 전 후 때로는 만나는 동안 등등 셀 수 없을 만큼 언제 어디서든 담배는 모든 상황의 처음과 끝을 함께 했다. 심지어 돈이 없을 때 밥대신 담배를 산적도 있고, 담배를 피기 위해 밥을 먹었던 친구도 있다.
스무 번 이상 금연을 시도했던 것 같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석 달. 담배와의 이별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보다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금연을 결심했을 때였다. 구청 보건소에서 받아 온 생체 회복 시간표를 하루에도 몇 번을 들여다보곤 했다. 인터넷 금연 카페에 가입하여 서로의 고통을 공유해 나갔고, 유튜브 채널의 금연 영상은 해외 영상까지 모두 시청하였다. 새로운 금연 영상이 없나 찾아보는 것에도 재미를 느꼈다.
하루하루가 지나고 니코틴을 비롯한 독소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금연은 근육통도 유발했다. 온몸의 근육까지 독소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참기 힘든 흡연 욕구보다 힘들었던 것은 잇몸의 통증과 가려움이었다. 이렇게 금단증상과 명현현상은 8개월 까지 진행되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어떻게 살지?'라고 걱정할 때도 있었다.
금연 후 1년이 흐르고 2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였다. 무모하게 시작한 사업도 한두 차례 휘청였다. 평상시엔 하루 두 갑, 술자리가 있을 때면 하루 세 갑을 피웠던 '헤비 스모커(heavy smoker)' 였었던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중병 한두 가지는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금연한 지,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지금은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은 사람보다 담배 연기를 더 싫어한다는 말을 듣는다. 다른 사람보다 전자담배 냄새에도 민감한 편이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 담배를 피우고 가까이 오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있으면 고역스럽다.
가족 중에서 한 사람만 담배를 피워도 구성원 모두 간접흡연 피해를 줄 수 있다. 80세가 되어도 흡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지만, 담배는 건강과 수명 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하루하루 제대로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고, 흡연자의 수만은 핸디캡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 가족을 위해, 환경을 위해 금연은 필히 실천해야 하는 사회적 덕목이다. 금연하는 날부터 적어도 하루의 담뱃값만큼은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금연 #담배탈출기 #행복한 생활 #지금부터잘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