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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차중 Oct 01. 2024

지리산자락 작은 마을, 운봉

해발 500m 지리산 기슭에 양떼 목장이 있었다. 7, 80년대 어렸을 적 양떼마을은 달력 사진에서 가끔 보던 그림이었다. 호주에서 목축 기술을 이전받아 국책사업으로 양털 지급의 자족화를 꿈꾸었던 곳이다. 양떼 목장은 사라졌지만 아늑한 고요는 지금도 천천히 흐르고 있다. 

바래봉 아래 작은 마을 운봉 삼산마을에 도착했다. 물길은 보이지 않아도 물소리가 들린다.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빨래터가 맞이한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시냇물이 지나간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지리산에서 내려온 시냇물을 끌어들여 한 갈래는 식수로 사용하였고, 다른 한 갈래는 빨래터로 길을 내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아낙들의 삶의 이야기가 넘쳐났을 곳이다. 지금도 이용되고 있지만 주로 농산물을 세척하는 곳이기 때문에 오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삼산마을 빨래터

무형유산 11호 목기장 박수태 선생님의 간판이 마을의 표지판처럼 걸려있다. 사기그릇을 만드는 사기장은 여러 번 만나 뵌 적이 있지만 목기장은 처음이다. 남원은 또한 목기로 유명하다. 제사를 지낼 때 쓰이는 제기를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생활 목기도 많이 사용다. 이 지역은 목기의 재료로 쓰이는 활엽수 목재를 구하기가 쉽고 재료도 다양하여 목기 기술이 발달한 곳이다. 남원 운봉목기공방은 선대 박건문 목기장의 대를 이어 60여 년을 전념한 박수태 목기장과 그의 아들 박상화 목기장까지 3대째 운영 중이다.

운봉 목기공방 내부

박상화 목기장이 물레방아 형식의 수동 물레인 족답기에 올라타 작동하는 모습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하다. 곧 마술처럼 통나무가 그릇의 모양으로 변한다. 다양한 목제품을 천연 옻칠로 마감하여 문화재급 목 그릇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어릴 적 아버지가 종기에 옻을 녹여 소반을 칠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옻 향기가 멈춰있던 기억을 부른다. 

저녁 식사를 위해 목기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근처의 식당에 들렀다. 확 트인 옥상, 산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식당이다. 내려다보이는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은 어느 고급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도 흉내 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 식당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 아니다. 원래 이곳은 민박집인데 민박 손님에게만 음식을 제공한다.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마을 촬영차 들른 우리 일행을 위해 잔칫상을 차린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가 보통 손님에게 차려진다고 한다. 남원 돼지로 조리한 수육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곁들인 삶은 호박잎은 수육의 기름기를 덜 느끼게 하는 동시에 육질의 찰진 식감을 더하고, 청량감 있는 파김치는 맛에 생기를 준다.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운봉 삼합이다. 

지역의 농산물을 직접 조리한 음식에 넉넉한 주인의 마음마저 느껴진다. 내일 조식도 이곳에서 약속이 되어 있다. 막걸리까지 준비한 주인의 배려가 고마울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송림을 찾았다. 350년까지 자란 소나무를 비롯한 100여 그루의 소나무는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낸다. 웃 숲, 중간 숲, 아래 숲으로 나누는 나무 군락에 밤바람이 잦아든다. 이 숲은 땅의 기운을 북돋우는 풍수지리의 한 방법인 비보림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송림의 남쪽과 북쪽 부근에는 두 개의 당산나무가 있다. 남쪽을 할아버지 당산 북쪽을 할머니 당산이라고 부른다. 할아버지 당산나무에는 원형의 돌담을 쌓았다. 

별빛 아래 송림 산책

소나무 숲 옆으로는 "늘, 파인"이라는 단정한 카페가 있다. '항상 소나무 곁에 늘 행복하게~'라는 뜻의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소나무 숲을 정원으로 한 운 좋은 카페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이 터를 지켜온 주민이 직접 운영한다. 노송이 드리운 솔잎 아래서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생각 한번 못해 본 일이다. 구름이 머문 운봉의 아늑한 밤이다.  

향교로 가는 길과 소나무

먼저 깬 것인지 새소리에 일어난 것인지 운봉의 새벽이 밝았다. 게으름으로 산마을 새벽 신선한 공기를 놓칠 수 없다. 다시 송림을 찾았다. 빨간 꽃무릇 위에 밤새 거미가 줄을 쳤다. 알 듯 말 듯한 새소리가 바람을 대신해 흐르고 풀벌레 소리도 싱그럽다. 숲길의 끝에 다다랐다. 운봉향교로 가는 길이다. 향교는 거기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이 길은 유생들이 공부하러 갔던 옛길이다. 마을을 지나는 시냇물이 옆으로 흐른다. 향교를 지나면 동복 오씨가 처음 터를 잡았던 산덕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산이 베풀어 준 덕'으로 마을이 무사태평함을 얻는 것을 감사하며 산제당을 지어 설날마다 제를 지냈다고 한다. 


소나무숲과 꽃무릇

향교와 산덕마을을 둘러보기에는 아침 식사 시간 전까지 너무 짧은 시간이다. 발길을 돌려 이웃 마을인 행정마을의 서어나무숲으로 향했다. 74그루의 서어나무와 상수리나무 2그루, 느티나무 2그루가 모여 숲을 이룬다. 서어나무 중 두 그루는 고사 한 상태다. 어제 나무를 세었던 이곳 관리자가 전해준 현황이다. 항상 섭 15도의 서늘함을 유지한다고 쓰여 있는데 그만큼 시원한 숲이라는 말일 것이다. 

연리지 한 쌍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그런데 이곳은 연리지 밭이었다. 확연히 모습을 드러낸 연리지만도 일곱 쌍이다. 연리지 숲이라 불리어도 괜찮을 만하다. 나무의 육질이 연약하여 동굴 같은 부후가 나무가 다. 커다란 상처로 인해 200년 동안 온몸을 뒤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썩살을 도려낸 폐부새와 동물을 품고 살아야 하는 서어나무의 애달픈 운명이다. 아지랑이가 춤을 추며 피어오르듯 굴곡진 하얀 나무줄기가 꿈속의 풍경 같다. 숲의 끝 한 그루의 나무에 진한 하트 모양의 상처가 있다. 사랑 나무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나무가 다 사연이 있어 보이네!"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적은 숫자의 나무지만 숲에 머물며 아침을 다 보내고 말았다. 

잘 구운 생선과 산나물로 아침 식사가 나왔다. 손님이 오시면 아무리 없어도 아침에는 생선 한 마리 올려 주라는 박수태 목기장의 철학을 전수받은 아침상이다. 온정 깃든 음식과 운봉의 풍경에 반해 한 달 후 화순으로 계획한 문학기행의 거처로 공원민박을 예약했다. 더 깊은 가을을 운봉에서 맞이할 생각에 떠나는 인사가 더욱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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