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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성기행

마이산 3대 사찰, 탑영제, 그리고 부부의 시

by 김차중


마이산처럼 기암을 얹은 산이 있을까? 고속도로에서 마이산을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마이산의 남쪽에서 산을 향해 걸으면 하나의 호수와 세 개의 사찰을 만날 수 있다.


식당가를 지나 금당사 일주문에 이르렀다.

아마도 세 개의 사찰 중 금당사 일주문이 유일한 듯하다. 이 일주문이 종파는 다르지만 탑사와 은수사의 몫까지 역할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불상과 탑이 절의 이름처럼 금색으로 칠해진 것이 절의 특징이다. 그리고 대웅전의 문의 모양이 부안 내소사의 문양과 흡사한데 문양이 여럿이고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대웅보전의 지붕이 황금색으로 칠해진 적도 있었다. 또한 이 절과 유사한 이름의 사찰이 맞은편 산에 있다. 대웅전에서 남쪽 산을 바라보면 9부 능선쯤에 황금색 사찰이 맨눈으로 보이는데 이 절은 고금당이라 불리우는 암자이다. 고금당은 과거 금당사가 위치한 자리에 있어 고금당이라고 부른다. 이 사찰을 또한 나옹암이라고도 부르는데 고려 말 나옹선사의 기도처이며 이성계도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금당사 극락보전

금당사를 나와 탑사로 향하면 바로 뒤편으로 탑영제가 있다. 맑은 날이면 마이산의 반영을 또렷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마도 탑영제라는 이름은 마이산 봉우리의 그림자가 비추는 호수를 뜻하는 것 같다. 산비탈에 데크가 설치되어 물속에서 노는 물고기를 구경하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탑영제

탑영제 끝에는 예사롭지 않은 시비가 있다. 250년 전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결혼한 남편 담락당 하립과 부인 삼의당 김 씨 부부는 시로 대화를 나눈다. 1769년 남원에서 태어난 삼의당 김 씨는 조선 시대 여성 중에서 가장 많은 257편의 시를 남긴 인물이다. 그들의 행복한 삶을 기리기 위해 명려각과 시비를 조성하였다. 하립의 시 「초야장화」와 김 씨의 시 「화답의 노래」가 새겨있다. 시비 옆으로는 부부의 재각인 명려각이 있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의 이름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다. 봉우리의 이름과 어울리는 이름이다. 남쪽에서 마이산 탑사를 향해 올라가면 부부의 연을 노래한 시들이 새겨있다. 이쯤 되면 마이산은 사랑이 이루어지는 산으로 불리어도 될듯하다. 먼 옛날 부부신이 몰래 지상에 내려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갈 때가 되어 새벽에 조용히 떠나려다 동네 사람에게 들켜 그대로 산으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있는 마이산이다.

남편 담락당 하립과 부인 삼의당 김씨의 시비와 명려각

드디어 탑사에 도착했다. 수차례 이곳을 방문했지만 올 때마다 드는 신비로움은 말의 귀를 닮은 독특한 마이산 봉우리의 모습과 높게 쌓아 올린 80여 기의 돌탑 때문일 것이다. 원래는 108개의 탑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겨울이면 사발에서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나는 현상 또한 기이하다.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동학혁명이 막을 내리던 시기, 이갑룡 처사는 어두운 세상을 한탄하고 나라를 구한다는 생각으로 25세에 마이산에 입산하여 탑을 쌓기 시작한다.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성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탑은 천지탑, 오방탑, 월광탑, 일광탑, 약사탑, 중앙탑, 월궁탑, 용궁탑, 신장탑 등 각기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의미와 역할이 다르다고 한다. 특히 천지탑은 하루에 한 덩어리의 돌을 올려 3년의 고행 끝에 완성된 탑이다. 맨 꼭대기 마지막 돌은 백일기도 후 올렸다고 한다. 천지탑 주변의 일자형 33개의 탑은 신장탑으로 천지를 감싸고 우주의 삼만 삼천 세계를 의미한다. 낮게는 1m부터 13.5m에 이르는 탑도 있다. 마이봉 중간에 파인 부분이 있는데 그곳에도 여러 개의 탑이 쌓여 있다. 탑사를 걷다 보면 ‘날지 않고서 어떻게 탑을 쌓아 올렸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여러 번이다. 이갑룡 처사는 돌탑 외에 신의 계시를 받아 적은 30여 권의 신서와 모든 재난과 재앙을 막아주는 부적 등을 남겼다.

마이산 탑사
산벽을 장식한 한그루의 능소화 나무

삼만삼천 세계를 의미하듯 탑사를 보호하고 있는 산벽에는 마치 등나무처럼 몇십 미터 길이와 폭으로 능소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이 나무는 뿌리가 하나다. 신기한 것이 한두 곳이 아닌 마이산 탑사다.

탑사를 지나 은수사에 올랐다. 은수사는 이성계가 물을 마시고 은같이 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마이산신 제단이 있어 매월 10월 11일에 마이산신께 제사를 지낸다. 은수사는 원래 개인 사찰이었다. 1920년에 정명암이라는 암자로 시작하였는데, 원래 이곳에는 상원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이곳이 은수사가 된 때는 1920년 이주부라는 선생이 중창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수사에는 줄사철나무 군락과 샘물 옆의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 있다. 이곳의 청실배나무는 수령이 600년인데 이성계가 기도처의 증표로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임실 상이암의 청실배나무의 사연과 닮아있다. 왕권의 상징인 금척(金尺:금으로 만든 자, 이것으로 사람을 재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다고 전해짐)을 받는 몽금척수수도와 왕궁의 왕좌 뒷면에 펼쳐진 일월오봉도가 팔각의 전각인 태극전에 그려져 있다. 일월오봉도는 마이산의 봉우리 형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은수사 대적광전

마이산은 그 신비로운 모습만큼 역사와 설화를 품고 있다. 7월 탑사의 산벽에 붉은 주황의 능소화꽃이 필 때 산에 들어야겠다. 겨울 눈 내린 산사를 보러 또 한 번 들러야겠다.

몽금척수수도와 일월오봉도
청실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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