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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마 Mar 02. 2024

[칼럼] 영화로 보는 인공지능 7_ 크리에이터

인간적인가, 인간의 적인가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류와 AI 간의 전쟁이 시작된다. 전직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내의 생존 소식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류의 작전에 합류한다.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무기와 이를 창조한 '창조자'를 찾아 나서고, 그 무기가 아이 모습의 AI 로봇 '알피'란 사실을 알게 된다.


AI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한 것은 오랜만이라 개봉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가 컸던 것일까 영화를 관람한 후, AI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약간의 실망감이 들었다. 영화는 놀라운 시각 효과와 화려한 비주얼로 나의 눈은 사로잡았지만 이런 요소들이 구멍 나 있는 스토리를 가리지는 못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이에서 던져지는 철학적 물음에 집중한 나머지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는 뒷전에 둔 느낌이었다. 플롯 디바이스는 인공지능과 갈등이 있는 미래 세계를 그렸지만, 그 배경에는 인물들의 설득력 없는 동기와 모순된 결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또한, 중요 플롯 포인트들이 갑자기 등장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인 흐름이 일관성을 잃었다.


그러나 두드러지는 단점만큼 뚜렷한 장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전쟁 속에서 명확한 진실을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관계 속에서 비롯된 전쟁 상황은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을 촉발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했다. 또한,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경계가 희미해질수록 더 많은 도전과 질문이 던져지는데, 승복을 입고, 인간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무리를 이루며 살고 있는 등의 인간과 다름없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더 많은 생각을 유발했다. 이처럼 영화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복잡한 윤리적 문제와 도덕적인 고민, 그리고 인공지능과 인간 간의 차이에 대한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남겼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AI를 인류의 적이라 하는 미국과 그와 반대로 AI와 공존하고자 하는 뉴아시아와의 대립을 그린다. 서구와 동양의 대립은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진 터라 크게 놀랍거나 신선하진 않았다. 미국은 AI로 인해 핵폭탄이 떨어져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AI를 몰아내야 할 존재로 지정했지만 영화에서 AI가 핵폭탄을 터트린 이유나 실제로 그랬는지는 자세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뉴아시아는 왜 AI와 공존하려 하는지 왜 AI를 비호하며 서방과 대립하는지의 이유도 마찬가지로 모호하게 나타난다.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요소들이 많아 영화에 담을 수 없었다면 쉽지만, 뭔가 의도가 있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은 왜 싸우나


첫번째, 전쟁의 명분이 있는 미국과는 달리 뉴아시아와 AI의 입장을 모호하게 제시하여 관객들의 생각을 자극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대립하면서도 각자의 입장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진실까지 불명확한 상태라면 영화를 보는 관객은 미국과 뉴아시아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바탕으로 영화의 본 주제인 AI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에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만든다.


두번째, AI가 무섭도록 발전하고 있는 지금 현재도 AI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AI의 발전이 가져다줄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는 사람들은 AI가 인류를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AI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브레이크 없는 AI의 발전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크리에이터'에서는 이러한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하기 위해 AI와 뉴아시아의 입장을 모호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 AI가 가져다줄 미래의 불확실성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세번째 항목이 필자가 생각한 가장 큰 이유로 전쟁의 이유가 불분명한 것은 알 수 없는 AI의 미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AI가 인류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론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AI가 위험할 수도 있다. 이처럼 AI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영화에서 미국과 뉴아시아 모두 AI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렇기에 미국은 AI가 위험하다 생각하여 몰살하려 하고, 뉴아시아는 AI의 잠재력을 믿고 공존하려 한다.








◾ 거대병기의 이름인 '노마드'가 가진 의미


미국의 거대 우주병기의 그 웅장함에 감탄이 나왔다. 저런 거대병기가 우주에서 빔을 쏟아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작 중 이 거대 우주병기는 '노마드'로 불린다. 'NOMAD'로 'north american orbital mobile aerospace defence'의 줄임말이다. 이처럼 의미가 있지만 원래 'nomad'는 방랑자,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질 들뇌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노마드의 세계를 '시각이 돌아다니는 세계'라고 정의했다. 이는 노마드가 특정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것을 탐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점이 생겼다. 왜 미국 최대 우주병기의 이름을 노마드라고 지은 이유는 뭘까 하는 것이다. 이유를 유추해 보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봤다.


첫번째, 영화에서 미국은 AI의 위험성을 우려하여 AI와 공존하려 하는 뉴아시아까지 몰살을 시도하지만 끝에선 결국 패배한다. 이는 미국이 AI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위험 사이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nomard'라는 명칭은 유목민처럼 방황하고 있는 미국의 불안정한 지위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두번째, 들뇌즈 철학에서 'namad'는 단순히 방랑하고 방황하는 자가 아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이에 적응하며 개척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질서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자세를 상징한다. 그러나 미국은 AI의 미래에 대해 가능성을 갖고 그들을 받아들이려 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들 기존에 갖고 있던 질서와 관습을 깨고 그들과 융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 배척하고 본인들의 지위와 세상을 더 견고하게 쌓아 올리려 한다. 이러한 미국의 행동은 노마드의 철학과 상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행동과 모든 것이 평행선을 달리는 뜻의 노마드를 AI를 몰살시키려 하는 거대병기의 이름으로 지었을까. 그 이유는 미국의 행동과 노마드의 철학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조적인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노마드'라는 이름이 가진 이해, 융화, 적응의 의미와 미국의 보수적인 태도와의 불일치를 나타내고자 했다. 이해와 융화, 적응을 의미하는 노마드의 이름과 미국의 행동이 맞지 않았기에, 노마드의 이름을 가진 거대병기를 폭발시킴으로써 미국이 가질만한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려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어린아이 모습을 한 알피의 존재 의의


숨겨진 AI의 비밀기지에서 마야가 발견됐다는 소식과 함께 니르마타가 인간을 몰살시키기 위한 AI의 비밀병기도 이 기지에 있을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뉴아시아와 AI의 격렬한 저항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지만 주인공 조슈아는 살아남아 봉인된 문을 넘어서고 그곳에서 AI의 비밀병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을 몰살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비밀병기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니르마타는 사실 조슈아와 사랑에 빠졌던 마야였고 뇌사상태에 빠지기 전 자신의 뱃속에 있던 아이를 스캔해서 이 비밀병기를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마야, 즉 니르마타는 인간과 대적하기 위한 비밀병기를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만든 것인가. 게다가 이 비밀병기는 외형만 어린아이일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생각들도 아이와 다름이 없었다. 조슈아라는 보호자가 없었다면 미국 측에 발견되자마자 사살됐을 정도로 경계나 안전장치도 없었다. 미국 측은 인간을 없애기 위한 비밀병기로 '알피'를 만들었다고 추측했지만 니르마타에겐 다른 의도가 있던 것일까


미국은 AI를 경계하고, AI는 인간을 두려워한다. 영화 내에서 이러한 두려움과 경계는 인간과 AI의 공존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이었을 것이다. 순수함과 희망을 상징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알피는 AI에 대한 두려움을 시각적으로나마 완화시켜 줄 것이다. 알피를 전면에 내세워 완화된 두려움으로 인간이 방심한 틈을 타 AI들이 대대적인 공습을 할 것이라고 혹자는 주장할 수 있겠지만 너무 평면적인 설정이기도 하고 영화 내내 수동적이었던 AI와 뉴아시아의 행동을 봐선 이러한 가설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진 않는다.


니르마타, 즉 마야는 자신의 뱃속에 있던 배아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알피를 창조했다. 외형은 로봇이지만 본질적인 무엇인가는 인간으로 되어있는 이 존재는 조슈아와 도망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마지막에는 조슈아와 이별에서는 울음까지 터뜨린다. 감정이 있는 이 존재를 완전한 기계, 또는 AI라 부를 수 있을까? 이처럼 기계로 된 몸과 인간의 복잡한 감정선을 가진 알피는 인간과 AI의 경계 어디쯤에서 부유한다. 그렇다면 불안전한 존재로서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알피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 마야가 알피를 아이의 모습으로 만들었던 것은 인간과 AI의 공존을 위한 거대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순수와 희망을 상징한다. 즉, 알피를 어린아이로 만든 것은 이런 순수와 희망적인 미래를 극단에 놓인 인간과 AI에게 보여주면서 이 두 개체의 유기적인 조화를 이룬 세계를 꿈꾸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 정리하자면,


미국과 뉴아시아는 AI를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다. 미국은 AI를 '인간의 적'이라고 간주했다. 미국에 AI는 사용하거나 파괴하거나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는 도구였다. 그런 도구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진화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인간의 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이 AI를 없애기 위해 뉴아시아를 침공하면서 자폭 로봇을 사용하는 장면은 미국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반면 뉴아시아는 AI를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AI들이 농사를 짓고 무리를 이루며 종교적인 영성을 느끼게 해주는 듯한 모습들을 보며 또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고 감정을 느끼고,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리하자면 미국은 AI를 '도구로서의 가치'로 판단한 것이고 뉴아시아는 '존재로서의 가치'로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뉴아시아의 갈등은 우리에게 AI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중용'이라는 사상이 있다. 사서삼경 중 사서에 포함되는 중용은 극단 혹은 충돌하는 모든 결정에서 중간의 도(道)를 택하는 유교 교리를 말한다. 알피가 로봇이면서 인간의 감정을 가진 어린아이의 모습을 취한 것은 양측의 조화의 매개체로 역할을 하기 위했다고 본다. 이는 중용의 원칙이 적용된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로봇들이 마야를 니르마타라고 칭하며 종교적으로 추앙했던 이유 또한 마야가 인간과 AI의 대립을 극복하고 공존하는 관계를 바랐기 때문이다. 즉, 마야는 인간과 AI, 극단에 놓여있는 이 두 '종족'의 행복과 두 세계 간의 조화를 끝까지 염원했던 것이다.








◾ 마치며


미군에게 잡혀있던 알피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조슈아에게 '저는 천국에 갈까요?'라며 묻는다. AI가 죽음과 천국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묻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미지의 존재로 여겨졌던 AI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감지한다. 이러한 감정과 고찰이 이전까지 미지로만 여겨졌던 진화된 AI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죽음을 인지하고 천국을 생각하며, 윤회를 상상하는 AI를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영화 속 인류를 대표하는 미국은 설명할 수 없는 AI의 존재를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과 다르면서도 같은 행동, 생각, 감정을 가진 이 존재는 어쩌면 인간이 후에 다다를 진화의 과정 중 하나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설명할 수 없는 AI의 존재를 두려워해 폭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이런 모습은 언 듯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보이지만 이는 불안정하게 발전하는 현대의 기술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고민을 반영한다. 도구로서의 존재와 가치로서의 존재의 경계가 짓이겨져 분간할 수 없는 순간, 우리 인류는 미국과 같은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며, 이는 우리가 어떤 개체로서 AI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미래의 우리 자신을 그려나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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