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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마 Mar 27. 2024

찢겨진 종이 속 실패를 바라보는

구겨지고 찢어진 종이에서 배우는 것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수년 전까지만 해도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땐 타블렛 대신 종이와 연필을 사용했다. 거의 모든 장소에서 빠르게 준비하고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도 있고, 그림을 지속할 만한 나갈 시간이나 인내심도 부족해졌다. 학생 시절, 나는 혼자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나올 때면 누가 볼까 두려워 황급히 페이지를 찢고 잔뜩 구겨서 휴지통에 처넣었다.


실수한 그림은 놔두고 종이를 넘겨 새로운 공간에 그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구기고 찢어서 없애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실패한 그림이 내 손안에 남아있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뜻대로 안 된 그림은 나의 한계를 알게 해주고 실패의 쓴맛을 곱씹게 해줬기 때문이다. 냉큼 찢어버리는 그 행동은 마치 실패를 없던 것으로 하고 싶은 얄팍한 욕구의 표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종이를 찢어서 버리는 행동은 나에게 일종의 의식과도 같지 않았나 싶다. 종이를 찢으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그림을 그릴 준비를 했다.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하얀 빈 종이를 보며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 종이를 찢고, 그림을 버리던 행위는 마치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가다듬는 과정과 닮아있다. 이렇듯 마음의 복잡한 감정이 부딪혔을 때, 종이를 찢는 듯한 행동은 그 순간의 무력함과 충격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선택된다.


새로운 종이에 새로운 그림은 성장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고 또 다른 아이디어나 가능성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를 찢고 버리는 것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 덮어버리려는 마음의 표출이었다. 실패를 덮어두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마음의 어두운 면을 부정하고 숨기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종이를 찢고 버리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행동은 마음 깊이 상처를 입히고,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태도가 좋을까. 필자는 찢어진 종이와 마주하며 그 실패를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실패를 바탕으로 성공 혹은 완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고 기록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성장과 발전의 디딤돌이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학, 공학, 건축, 예술 등 다방면에 걸친 수많은 아이디어와 실험 결과를 노트에 상세히 기록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성공한 사례만이 아니라 실패한 시도와 오류들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묘사했다는 점이다. 천문학과 물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준 갈릴레오 갈릴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천문학 관측 일지인 '항성의 메신저'에는 스스로 제작한 망원경의 결함이나 날이 흐려 별을 관찰하지 못했던 사례 등 관측 실패나 오류가 있었던 날짜나 원인들이 모두 적혀있어 실패와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처럼 두 거장 모두 부끄러운 실수나 실패를 숨기지 않고 남김으로써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실패를 직시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통찰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그들은 당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위의 사례로 알 수 있는 건 실수는 누구나 있을 수밖에 없고, 완벽할 순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수많은 실패가 쌓여 성공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다는 것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완벽을 갈구하다 보면 작은 실수에도 좌절하고, 그로 인해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곤 한다. 구겨진 종이 한 장 한 장이 우리의 좌절과 실수를 상징한다고 생각해 볼 때, 그 구김살 투성이의 종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찢고 구기고 버리기보단 마주하는 태도를 가질 때 비로소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종이들이 내 인생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높고 낮았던 기복, 좌절과 실패, 그리고 그 사이를 꿋꿋이 버텨온 인내의 굽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삶에는 실수와 실패와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경험들을 어떻게 마주하냐다. 실패를 감추거나 없던 일로 삭제해 버리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겨지고 찢긴 종이 한 장 한 장에는 우리의 노력과 좌절, 도전과 실패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것들마저 소중히 여기고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찢고 구겼던 종이를 다시 마주하며 마음의 실패를 품어안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입에 쓴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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