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
무려 예술의 전당 특별전이고 오픈 첫 주 주말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도 여럿 보였던 걸 보면 이번 전시는 확실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즐기기 좋은 전시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했던 전시인 만큼 입장을 기다리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
프리뷰에서 알게 되었던 대로, 전시는 4가지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 어릴 적 상상, 꿈꾸던 미래
알고보니 물고기였던 섬마을 <Fishy Island>. 에릭 요한슨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런 식이다. 선명하고 아름다워 마치 현존하는 세상을 담은 것 같은 같은 사진이지만 사실은 합성인 것이다. 물론 이어붙인 사진들을 작가 본인이 전부 촬영했다는 점 역시 특징이다. 훌륭한 사진술과 편집술, 거기에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져 멋진 작품들이 탄생한다.
첫 번째 섹션은 대체로 어린아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고기가 섬이고, 섬이 물고기라면? 풍선을 많이 들고 있으면 옥상에서도 점프할 수 있을까? 나무로 만든 조각배 위에서 물고기를 구워먹는 건?
따로 일기로 기록해두었던 게 아니라면, 어릴 적의 허무맹랑했던 기억을 다시 되살리기는 쉽지 않다. 머나먼 유년시절의 기억을 생생히 떠올리고 이런 작품들을 기획한 작가의 눈썰미가 대단했다.
#2. 너만 몰랐던 비밀
에릭 요한슨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Full Moon Service>가 바로 이 섹션에 있다. 섹션 1처럼 어릴 적에 해봤을 법한 상상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마치 누군가의 장난 같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와서 이 사진을 보여주며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달 모양을 매일 바꿔주는 서비스가 있대’하면서 속삭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순간 솔깃하지 않을까?
#3. 조작된 풍경
얼어 있던 호수가 죄다 깨져버린다면? 세 번째 섹션은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풍경을 주제로 삼고 있다. 도로가 반으로 찢어지거나, 집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절벽과 절벽 사이를 다리처럼 잇고 있거나. 에릭 요한슨은 ‘본인이 작품 속에 실제로 들어가 거기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라’ 라고 말한다. 과연, 확실히 더욱 섬뜩해지는 기분이 든다.
#4. 어젯밤 꿈, 악몽
마치 영화 <인셉션>이나 <닥터 스트레인지>를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도시의 모습. 악몽에서 꾸곤 하는 반복되는 공포를 반영한 듯하다. 앞선 섹션 1이 밝고 순수했던 동심을 주로 다뤘다면, 섹션 4는 공포감으로 가득했던 동심을 다룬 느낌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공포 말이다.
# ‘영잘알’만을 위한 전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영어로 된 원제들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령 <Expectations>의 경우, 아마 수많은 자아로 보이는 ‘나’의 모습들이 나를 다양한 지켜보고 있는 것에서 나 자신에 대한 나의 여러 가지 ‘기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도 나왔듯이 에릭 요한슨의 작품은 제목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는 작품에 대한 어떤 부연설명도 하지 않고 제목만으로 감을 잡도록 하고 있는데, 한국 관객들에게 한국어 제목을 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작품 감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더 심각했던 점은 영상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작가의 작품관 등이 보여지는 중요한 영상물에서 자막이 온통 영어였다고 하면 믿어지시는가? 원어민이 아닌 이상 순식간에 지나가는 영어 자막을 온전히 이해한 관객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객들이 특히나 많은 모습을 보고 더욱 안타까웠다.
# 작품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신작
나는 포토샵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합성이나 보정 작업을 할 때에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레이어’라고 부르면서 층층이 쌓아 나가고 변경하는 방식이라는 건 안다. 에릭 요한슨은 100개가 넘는 레이어를 한 작품에 사용한다고 하니, 얼마나 정교하게 작업했는지 감이 잡혔다. 이렇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쓰인 레이어를 모두 공개하는 전시 방식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이번 전시를 위해 공개된 신작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궁금하시다면, 전시회에 가서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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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했던 전시지만, 주제별로 나누어진 섹션과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한 ‘포토존’이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에릭 요한슨의 참신한 작품세계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친구, 연인, 부모님, 어린아이 누구든지 데리고 가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전시는 6월 5일에 문을 연 이후, 9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장소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이고, 예술의전당 홈페이지나 멜론 티켓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다.
상상을 찍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 사진展: Impossible is Possible
전시 기간: 2019년 06월 05일(수) ~ 2019년 9월 15일(일) /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비타민스테이션)
관람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입장권:
- 성인 (만19세 이상) 12,000원
- 청소년 (만13세-18세) 10,000원
- 어린이 (36개월 이상-만 13세) 8,000원
- 단체 (20인이상) : 정가에서 2,000원 할인
- 기타 할인행사 정보는 홈페이지 참조
문의: 예술의전당 홈페이지(www.s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