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불건강보다 불안정

이런 걸 그런 거라고 하는 거였을까?

by 한월

'특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라는 것 따위는 모르는 척하고 경쾌하게 걸어가는 게 불쾌했다. 나는 희미한 외광에 전등 빛이 섞인 속에서 어디까지고 *북쪽을 향해 걸어갔다.'

*동서남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은 북, 밝은 곳은 남쪽이다.

이 문장은 내가 지금 일문학과 전공 문학 강의 시간에서 다루고 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톱니바퀴"라는 소설 중 한 문장이다. 원어를 직역한 거라서 실제 정식으로 출판된 번역본과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번역하게 될 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문장인지 전혀 알아 듣지 못할 것이었다. 물론 실제 정식으로 출판된 번역본을 보면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어도, 장담하건대 그럼에도 이 문장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심정을 체험할 수 있는 진짜 문학의 기능이기에 이해까지는 가능해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자살과 함께 남겨진 유작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자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죽기 직전까지 그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알 수 있는 자서적인 작품이다.

소설은 '나'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의 직업은 밖에서 팬이 알아 볼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지만, 이야기 내내 정신분열적인 양상을 보여 준다. 예를 들자면, 레인 코트를 입은 남자의 환영을 본다든가 어떤 말 속 단어에 집착하는 모습, 무엇보다도 이 소설의 제목처럼 눈앞에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환영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위 문장 또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앞에서 든 사례와 같은 혼란스러운 현상을 겪은 후 급히 사람들이 붐비는 인도로 나와, 걸으면서 주인공이 든 생각이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을 걷고 있는 상황.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할까?

대부분이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긍정적이고 밝고, 활기찬 것은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걸 우울이라는 감정의 심연이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다시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 것 같은가?

피폐.

이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 피폐해진 내 쪽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그뿐만 아니라 내 시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풍경은 아마 잿빛일 것이다. 그런 세상 속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걸어간다. 내가 처하고 있는 상황과 반대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 사람들은 그대로 괜찮은 건가?'

문장으로 나타내니, 열등감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전혀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다.

덜컹거리는 지하철 속,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서 있는 사람들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서 있는 사람들처럼 손잡이 붙잡고 중심을 잡아본다. 그리고 나는 시선을 앞으로 향하게 한다. 나는 고개를 똑바로 하고 앞을 내다본다. 방금의 묘사와 같은 광경이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들과 지하철 속 풍경이다. 여기서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을 의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러한 행동 속에서 위화감을 느낀 적이 많았다.

위화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이란 게 있다. 그런 느낌을 받으며 나는 오늘 아침에 신경계 약들을 먹었음에도 이상하게 불쾌함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긴장 상태에 놓인 채 정체 모를 불안에 떨고 있으며, 갑갑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증세에 온 신경을 쓰게 되면, 공황 발작은 심화된다. 정체 모를 불안감과 함께 도는 긴장감, 갑갑함은 극대화되어,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지고 숨을 쉬는 게 불편할 정도로 가슴이 조이는 느낌에 호흡 곤란 증세를 겪게 되는 것이다. 어지러움과 함께 눈앞이 흐려지고 깜깜해지면서, 아득한 상태로 불안은 공포로 바뀌어 압도적으로 덮쳐온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모른 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갑갑한 기분에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만큼은 깨끗하게 지울 수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거지만. 그럼에도 일상적으로 오는 이 발작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는 있기 때문이겠지.

공황뿐만 아니라 아빌리파이를 복용하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창문에 빛이 반사되어 투영된 내 모습에 이상한 경계심을 품었었다. 또는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에 나는 너무나도 위화감이 들었었다.

동공이 확장된 커다랗게 뜬 두 눈은 나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끔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무언가의 의혹을 품었었다.

3년 전에는 아마 이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분명 큰 문제였다. "인간 실격"을 썼을 무렵의 기억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느낌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겨울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여름마다 등뒤로 느껴지는 꺼림칙함으로 보여지는 게 있으니까.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기록은 해 두었지만, 다시 읽기에는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쓴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수치심에 혹시 나는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걸까?

나는 지금의 나에게 늘 자신을 부끄러워하라고 하고 있다. 네가 겪는 것은 대수가 아니라고. 그렇게 해야지만 내가 아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며칠 전 계단에서 미끄러진 일 때문에 꼬리뼈 쪽이 다쳐서 아직까지도 고생 중이다. 이미 소염 진통제는 다 먹은 지 오래다. 그런 와중에 대학병원에서 반년치 간질약을 처방받아 왔다. 매일 먹고 있는 정신과 약과 뇌전증 약. 정신, 신경으로도 벅찬데 참 고약한 고통이다.

약을 안 달고 사는 날은 없다. 그만큼 약값은 약값대로 빠져나간다. 그것도 부모님의 돈으로. 심지어 괜히 약을 먹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이는 느낌과 함께 호흡 곤란 증세를 호소한 이후로 심장 내과 진료까지 예약해 둔 상태가 돼 버렸다.

아아, 어쩜 이리 불행한 일인지. 솔직히 말해서 딱히 불행할 건 없지만.

매주마다 생활비로써 용돈을 두둑히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5만원 이상의 지출이 나가는 날 이후로는 통장에 돈이 30만원에서 20만원대로, 20만원에서 10만원대로 내려가는 걸 보면 죄책감과 수치심이 미친듯이 들 수밖에 없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아직 거의 20만원 가까이 유지하고 있지만, 이 돈들은 다 내 돈이 아니다. 그래서 밥 먹는 것도 아까울 지경이다.

강의 시간표가 점심시간을 가로지르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아침을 먹지 않는 주의라서 하루에 한 끼 먹는 꼴이 나버린다. 그럼에도 아침을 먹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없으니 빵과 디카페인 커피나 차로 아침 끼니를 떼운다. 그렇게 모든 강의가 끝나면 곧 저녁에 가까운 늦점심이다.

이러한 이유로 식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하는 중이다. 사실 상 생활비로써 받는 용돈으로는 거의 먹는 곳에만 쓴다. 역시 그중에서 카페는 사치라고 생각하나, 스스로 괜찮다며 달콤한 유혹으로 속삭여서 자기합리화를 한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에 자업자득이다. 그래, 자업자득. 모든 것은 뿌리는 대로 거둘지니.

하고 싶어서 했고, 그 결과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제 더이상 대신 책임져 줄 존재는 없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불안한 것이다. 아마도, ……

그렇게 해서 결과를 후회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껴 속죄를 한다. 누구를 위한 속죄인지는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다. 나 자신이겠지. 내가 편하자고 하는 속죄. 거기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해서 다행인 건 아니다. 내가 편하자고 하는 사과랑 다른 게 없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이면 괜찮다고? 진짜 나는 몹시 괴로워할 텐데? 그럼에도 좋은 것이다. 속죄를 하는 대상도 나, 속죄의 대상도 나. 그러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자기 모순에 빠지는 게 얼마나 멍청한 일인지.

이게 그 증거다. 자기분열적인 이 글 속에서 문장들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그것에 대한 해답들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혹자는 이를 기억이라고 불렀던가.

세상, 세계, 과거, 역사, 기억, 망각, 죽음.

여기서 생(生)이 들어가는 것은 어째서 위화감이 들게 되는 걸까.

지금은 불건강보다 불안정이 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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