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에 젖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나야. 다르게 설명할 수 없어. 내 성격을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 없어. 원래 인간은 그런 거야. 아니, 모든 건 딱 잘라서 정의할 수 없어. 나는, 나는... 무조건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괴로웠어. 이 세상은 명확하고 실용적인 답변, 정답을 원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건 아니라고 봐... 나의 고집이지. 그렇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언어에는 한계가 있어.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회의론자는 어딜 가든 있으니까, 그렇지? 맞는 말을 하더라도 아니라고 하고, 궁금한 말을 하더라도 의심을 하니까. 저기든 여기든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다고... 보지 않아. 왜냐하면 다들 달라. 천하태평으로 예리하게 볼 수밖에 없는 내 눈은 세상이 정해둔 기준에 평균에도 못 미처. 그렇지만 정말인 걸. 내 입장은 바뀌지 않아. 인간은 정의할 수 없어. 생각은 자유라고 했지? 그래서 우리 인간은 다른 생명체를 정의할 수 있었어. 이렇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무사해서 정말로. 그런데 내가 정의할 수 없다고 한 건 바로 다름아닌 사유라는 거야. 그리고 그걸 정리해서 기록하고 입을 열어서 내뱉는 말. 그것들은 전부 머릿속에서 사유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지 않아. 똑같을 수 없어. 마치 자다가 꿈을 꾼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 머릿속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일어난 걸 똑같이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몇 없어. 그래서 자기가 꺼낸 말을 온전하게 훤히 보란 듯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거야. 특히 나는 건축가나 발명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은 처음 꺼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사람들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지 뜯어서 고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의 책임을 가지고 있어. 처음이 실패하고 실수했으면 몇 번이고 재도전하고 재건축하고 다시 만들 수 있어. 실현될 때까지. 성공할 때까지라고 하는 건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말이야.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이 아니라, 노력해서 내가 진짜 이루고 싶은 게 뭐냐는 구체적인 질문이 나에게 필요했던 거였어.)
'왜'라는 물음에 완벽한 답변. 그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왜냐하면 생각은 너무나도 자유니까. 원하는 건 각자 달라. 분명히 그럴 거야. 너의 '왜'라는 물음에 꽂히는 답변과 그렇지 않고, 전혀 와닿지 않는 답변이 있을 거거든. 그리고 그건 누가 내게 답변을 해주냐에 따라서 더욱 상이할 거야.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필요로 한 것. 내가 알려달라고 한 것. 내가 직접 알아내겠다고 한 것...... 내 욕심은, ......)
그러니까 받아들이는 사람, 즉 네 진정한 마음과 네가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이 네 세상의 모든 걸 정의내릴 수 있는 거야.
누군가들이 이미 정의해놓은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하면 참 꼴볼견이겠지. 왜냐하면 너무나도 흔해빠진 대사니까. 하지만 나는 어차피 이제 시간이 없다고 느끼니까 괜찮아.
사람마다 다 달라.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란 없어. 그러니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거야.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달라. 그림체도 달라. 똑같아 보일 순 있어도 완전히 똑같을 수 없어. 단순한 거잖아. 누군가들의 생각에 휩쓸리고 떠밀려서, 타성에 젖어서 자신의 신념을 져버리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