悲와 句斗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다. 비바람이 거센 오늘 같은 경우는 바깥에 당연히 나가지 않지만, 병원을 가야만 했었다. 어제 기숙사 짐을 옮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를 발견해서 물가 근처에 장시간 있다 보니... 아니, 일단 거의 밤을 새고 일찍 기숙사로 가서 짐을 옮기고 방을 정리한 것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짐을 정리한다고 왔다 갔다 했던 것부터 뭔가 잘못됐을 것이다. 한마디로 나름 무리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진짜다. 덕분에 독감 후유증으로 기관지가 약해진 탓에 다시 감기 기운이 올라 왔다. 운동 부족, 체력 부족인 상태로 최근 많이 움직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온몸이 쑤셨다. 그건 백 번 양보하겠다. 하지만 기침이 또 도졌다.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목을 막 쓴 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심했을 터. 애초에 아직 불안정하다곤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호들갑 떠는 건 잠시 눈 감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차가운 공기나 온도에 노출되면 금방 기침이 나온다. 원래도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었던가 싶을 정도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너무 불편하다.
어쨌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재난이었다. 대체공휴일이라서 하는 병원은 당연히 없었지만, 무사히 오후 세 시까지 하는 곳을 발견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네이버 지도에서 진료 중이라고 뜬 곳을 찾아갔더니 대체공휴일이라서 사실은 휴진이라는 걸 알았다. 괜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일단 가볼까 싶어서 먼저 전화를 돌렸었다. 다행히 병원에 갔지만 기관지에는 아직 염증이 있다는 듯했다. 끈질기다고 해야할 지, 조금 불쾌해졌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는 말을 반복하며 길을 걸었다. 버스를 타기에는 너무 아까운 거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하게 걸어가선 안 됐었다. 후회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나간 김에 장을 보고, 외식으로 늦은 점심을 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산이 망가졌다. 장을 보고 식당으로 걸어올 때부터 우산이 뒤집혔었지만, 다시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어서 꽤 튼튼한 우산이라고 생각했더니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이 세 가지 문장이 지금 몽롱한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우산이 망가진 게 집 근처에 왔을 때라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결국 감기 기운에 기껏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왔는데 비를 맞고 돌아와 버렸다. 평소에 쓰던 안경은 빗물에 가려져 또다시 불쾌하게 만들었다. 어떻게든 겉옷에 달린 모자로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차가운 비바람을 맞고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지쳐버렸다. 바로 샤워를 할까 생각했지만 일단 점심 약을 까먹기 전에 약을 먹고 모니터 너머 메모장에 그저 몇 마디 끄적였다. 그러다가 따뜻한 물로 몸을 데워야겠다 싶어서 씻고 나오니 잠이 쏟아졌다. 아아, 내일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역에 가야 하는데... 그런 걱정을 하며 고민하다가 결국 알람을 맞춰 두고 잤다.
그러고 나서 일어난 후 온몸이 부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손마디가 움직이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애초에 욱씬거렸으니까 부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지만. 그게 정상이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굴도 부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내가 자는 동안 양쪽 뺨을 잡아 당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단 온몸이 찌부둥한 건 여전하다. 확실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건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잘 먹고 잘 쉬었는데 왜 이런 건지 알고 싶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은 게 생각났다. 정확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답에 도달할까 봐 두려웠다. 아니,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뭔가 전해지는 게 있으려나. 원래 같으면 나는 이런 걸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썼던 적은 있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 내가 직접 만든 이야기들은 딱히 읽혀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딱히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에는 그림을 포기하고 나서부터, 그렇게 말해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대충 어리짐작은 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나만 알 수 있다. 그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글로 표현한다는 그런 거창한 의미가 아니었다. 혹시 정반대였다고 해야할 지,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고 해야할 지.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기에 대신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감을 얻으려고 했다. 그래. 내 모든 글은 어디까지나 개인주의적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시선으로 쓰고 싶어도 결국에는 내 주관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너무 주관적이게 돼버렸다. 그럼에도 감정을 정리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솔직히 이러한 건 의도하지 않았던 만큼 의식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 이성을 붙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내 모든 글은 나 자신의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소설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에 나를 투영시키면 어쩌잔 말인가. 내가 생각하는 소설은, 문학은 아마도 이상론이 필요로 하고 거기에 따라야 된다는 고정관념 따위가 있었기에 나는 내 글을 부정하다시피 했던 거겠지.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됐던 걸까.
시나 수필은 개인의 감상을 토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써내려갈 수 있었다. 반면에 소설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시나 수필도 사실 상 형식은 있지만, 소설만큼 형식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뚜렷한 형식이 있어야만 단편이라도 겨우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소설은 쉽지 않다. 물론 얼마든지 써내려 간다면 써내려 갈 수 있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니까. 최대 4만 5천자까지 갔던가. 물론 거기까지 가면 그건 이미 단편이 아니고 중편이지만. 단편은 보통 최대 만 자 이내니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단편을 쓰려고 하면 그걸 넘어섰고, 중편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글이 돼버렸다. 어중간한 글이 튀어나와선 미완성인 것들도 여러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게 정말 애매하다. 사실, 책을 낼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굳이 욕심이랄까 조금의 용기를 빌려서 말한다면 책을 펴내는 게 일생의 소원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려나. 내 글이 책으로 된다니. 내 글이 내 손에 직접 들려져 있을 수 있다니. 마치 내 글이 살아 있다는 무게감이 들 것만 같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손에도 들려져 있겠지. 현실을 생각하면 대충 알겠다.
문학은 좋지만, 문학은 하고 있지 않는다.
글을 쓰는 건 좋아하지만,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모순이 있기에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 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런 몽롱한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도 역시 무리인 걸까. 확실히 글을 쓰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나름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하지만 그것만큼 건강하게 허기가 지는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상실에 가까운 쇠약에 빠질 땐 그것조차 무의미하지만. 역시 힘들달까, 피곤하다. 아직 저녁도 먹지 못했는데 벌써 이런 시간이라니. 얼른 뭐라도 끼니를 때우고 약 먹고 다시 잠에 들어야겠다. 불을 끄고 싶지만 역시 조금 불편하다. 방의 불을 꺼선 안 된다고 해야할 지, 방의 불을 꺼봤자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뭐, 불을 끄지 않아도 잠에 들 수 있긴 하니까 말이다. 정말 예민했던 때는 불을 끄지 않고선 버틸 수가 없었지만 그때는 정말 골치가 아팠다. 역시 사람은 너무 민감하면 독이다. 어쩌면 그 지나친 예민함이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했다. 그 예민함이 좋은 길이든 나쁜 길이든 말이다. 좋은 길에서도 결국 마지막은 지쳐 쓰러진다. 그걸 직접 경험한 적은 없어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에 지나치지 않는다.
일상어, 그게 바로 내 글의 특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되도록이면 화려하다고 해야할 지, 문학어로써 잘 쓰이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기도 하고 말이다. 애초에 글을 따라하는 것도 모자라 내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쓰는 게 버틸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러웠다. 괜히 뭔가 있어 보이는 척하고 싶지 않은 나의 노파심도 있지만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그다지 없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글을 남기면서 완전히 관심을 가져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글이 수십, 수백 개가 쌓일 정도로 쓰다 보면 자연스레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 하나가 포인트가 돼서 계속 보러 오고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거겠지. 마치 이런 거다.
10명 중 1명이 비정상인이라면 100명 중 10명이 비정상인 거고, 점점 머릿수가 많아질 수록 당연히 그 값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수학이나 논리는 자신이 없어서 아주 큰 실수와 오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 말이 제대로 상대방에게 전해질 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해 온 건 사실이다. 말을 더듬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했던 일도 많으니까. 그리고 혼났던 적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간 과거, 별로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던 일이다. 이제 와서 원망해봤자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돼버린 듯하다. 애초에 웬만해서는 누군가에게 원망하고 화내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너무 미숙하고 미숙했다. 업보라면 업보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다.
항상 내 글은 이런 식으로 끝난다. 개인적인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에는 나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그게 허점이라면 허점이다. 그래서 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상상은 별로 하고 싶지도, 그리 현실성 있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쓴 글, 무계획적인 글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겠느냐만 보통 수필로 넘어가니까 말이다. 그래봤자 일기라고 평가되는 건 감안(我慢、がまん)해야 하는 부분이다.
아아, 역시 하루라도 모니터 너머로 글을 남기지 않고선 버틸 수 없는 나날도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일상이 그렇다. 매일 있는 일상 또한 나는 그냥 납득하고 넘길 수 없는 듯이 나는 계속해서 쓴다.
그저 쓴다. 그냥 쓴다. 단지 그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 나는 나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테다.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게 있겠지. 그렇기에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며 나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좀처럼 쉽지 않은 건지 이제 와서야 궁금하다. 누군가 납득시켜 줄 우문현답이라도 있다면 좋을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한 가지의 공통점이 보이고 제외된 나머지가 내 것과 타인의 것이 달라 보일 때 오는 "남의 떡이 내 것보다 더 커보인다"라는 어리석음이 가시질 않는다. 이게 욕심이라는 거겠지. 이게 원죄, 라면 원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그런 건가.
원고지의 잉크가 뚝뚝 떨어지는 듯이 바깥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빗물로 온갖 건물의 지붕과 지붕(自分、じぶん)이 젖어가는 게 원고지가 잉크로 번져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저씨 같은 말장난이다.
동경(東京)을 동경했다. 이 말은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 촌스럽고 없어보여도 이게 나만의 문장이라면 그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항상 유감이지만 내 글은 마무리가 허술하다. 글이 마무리까지 갈 수록 힘이 느슨해진다. 마치 마라톤에서 골의 직전 선이 보이자 저절로 힘을 빼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변명을 하자면 체력 부족인 걸까. 우스갯소리지만. 어쨌든 그런 게 내 글의 단점이라면 단점인 거겠지. 그 때문에 내 말에는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당신의 주장은 뭐야?"라고 묻게 되는 거겠지. 그걸로 엄청나게 피해를 본 나로서 정말 송구스럽다. 반면교사가 지켜지지 않았다. 마치 나의 빨간색 루비가 깨진 듯이, 산산조각 부서져 버렸다.
한마디, 한마디. 그 문장에는 개인 특유의 심상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글로 남을 속이는 건 완전 범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글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하소연은 가능하다. 그렇게 억울하고 답답하다면 얼마든지 변명을 늘어놓아도, 핑계를 둘러대도 상관없는 거지만 책임은 온전히 본인 부담이다. 솔직히 이게 현실이라 잔혹하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절필까지 이르기는 멀었다. 괜한 군말이다. 글이 길어지니 말이다. 괜한 호들갑을 떠는 걸 자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나 말고 또 누가 있다는 소리란 말인가 싶은 느낌이다. 이상한 비유와 해괴한 말을 하는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다지 보기 좋은 얼굴은 아니다. 뭔가 연기하듯이 연극적인 과장된 얼굴이려나. 늘 그랬듯이 말이다.
나는 알 수가 없다. 알 방도라곤 전혀 없다. 그 무엇이든. 그렇지만 헛되게 발을 옮긴 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아니기 때문에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안일한 걸까. 그럼에도 당신들은 너무 성실했다. 그 말만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래. 당신들은 너무 성실한 나머지 저마다 자신을 깎아내렸다. 그렇지만 이런 건 심증도 되지 못하는 것. 어디까지 무례한 추측에 가깝다. 추리와 추측. 예측... 그 어느 것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들. 셋 다 클로버지만 나는 어느 카드도 꺼내서 테이블에 놓을 수 없다. 이미 끝이 보인다. 그래. 이미 어떻게 될 지, 어떤 결말일지 뻔하다. 나는 질려버려서 카드를 던진다. 그런 심상이 비가 오는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에 센치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그럴 듯해 보이게 한다는 거랑 뭐가 다른가.
검열. 자기 검열. 나를 그렇게 하지 않고서야 나는 그냥 버틸 수는 없다. 멀리서 봐야만 희극이 아니다. 멀리서 보기에 비극인 건 얼마든지 있었다. 예외는 늘 존재했고,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깨달을 때마다 오는 충격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모순 또한 함께 늘 존재했다. 그럴 때마다 모순에서는 예외가 없다는 것만큼은 또 실로 불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라면 마땅한 이유도 없이 모순에 포함되는 것만큼은 없으니 말이다.
참으로 이상한 글이다. 아니, 이상한 글일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답은 '아니'다. 내가 쓴 어떤 글이든 나의 답답한 성격과 함께 보는 사람이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할 것만 같다는 감상이 절로 떠오른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 글에는 일단 무책임하게도 아무런 답은 없다. 명확한 거라곤 그 어느 것도 없어서 해명할 것도 없다. 이건 아마도 방어 본능이다. 되돌려 드릴 말도 없다는 건 사과의 말. 그런 것도 들었던 것 같다. 아아, 왜 이제 와서 지난 날의 일을 꺼내 들어서 떠올리는 것인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들 나는 그럼에도 글을 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위해서 글을 쓰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니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인 걸 부정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은 사실. 산 사람은 산 사람.
항상 이야기가 길어진다. 이런 식으로 또 얼버무리면서 이야기의 문을 닫으려고 하는 게 너무 어설프다. 알고 있지만 이게 나만의 문장이라면 그것만큼 반가운 것도 없겠지. 그리고 말이 길어지는 건 빙 둘러서 말하는 나의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다. 너무 자신을 과보호한다. 막상 하면 그리 아프지 않을 텐데 겁쟁이 같다. 참고로 이 말은 일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문장이지만 어떻게든 풀어쓰려고 했다. 실패한 것 같지만. 이래서야 전혀 이해하고 알지 못했잖아. 이래서야 전혀 전해지지 않았잖아. 하고 누군가 초조해 하는 목소리로 곤경에 처한 듯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 또한 곤란해진다. 이래서야 둘 다 재기불능이다. 그나저나 정말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뭘 전하고 싶은 걸까. 답이 없는 문제에 매달려서 이렇게 된 것도 있다고 말하면 봐주려나?
전생하면 분명 허세 가득하고 오글거릴 정도로 중2병에 가까운 이미지로 보여질까나.
나로는 안 될까나. 나로선 안 될까나, 그것.
분명 백 년 뒤면 나는 이런 낡은 몸은 버리고 다음 생에는 비(雨)와 시(詩), 오(烏)와 조(朝)로 변해질 테니까.
아아, 사랑스러운 노랫소리가 좀 더 들렸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