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목(木目)

어제가 금요일이었다면 오늘은 내일이었을 텐데!

by 한월

타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지만, 금요일에는 전혀 강의가 없어서 매주 목요일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본가로 돌아간다. 목요일에 열차를 타고 고향에 도착하면 퇴근시간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 버스는 이미, 마치 정말로 콩나물 시루였다. 그렇게 저녁에 아무도 없는 본가에 돌아오면, 잠옷으로 갈아 입고 자연스레 침대에 간다. 그리고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부모님은 밤 늦게 돌아오신다. 조용한 방안에서는 폰에서 흘러나오는 동영상 소리, 나의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분명, 집에 오자마자 던져 둔 건 노트북 가방과 강의 교재가 들어 있는 책가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들여다 보지 않는다. 어느새, 이력서를 작성하는 과제는 잊고 있었다. 다음주에 가는 학과 MT와 약속과 어제의 생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금요일 오후 세 시는 적막하다. 그저, 정말로 매화가 지고 있을 뿐이다. 목련도 피어 있다. 햇볕이 잘 드는 곳 쪽에는 이미 벚꽃이 피어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호수 유원지 입구 쪽 매화 나무는 저번보다 잎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예상대로 지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봄바람에 매화 꽃잎이 후두둑하고 떨어지며 공중에서 흩어졌다. 나는 확실히 그 속에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있는 육감(六感)이 들었다.

중간중간 떠올리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이 적막은 당연한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이 시간에는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다. 또는 강의를 듣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적막은 나에게 죄책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날씨가 좋지만, 춘람(春嵐)이었다. 주변 소리가 묻히는 듯했다.

감수성이네 예리하네 뭐네 하며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에 취해 있는 게 괜찮다는 말은 내 손에 칼을 쥐어 주는 것과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보호 본능과 회피, 그리고 안정과 편안함이라고 마음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너무 쉽게 편하게 살았다는 걸 깨달은 건 요즘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 전후로 나는 조금씩 깨달으며 절망했었다. 한껏 비교하며 이런 건 잘못된 것이라고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괜찮다는 위험한 유혹에 눈을 감고 무작정 걸었다. 나도 똑같았다. 대학에 가는 이유, 여기에 온 이유. 그저 전공이 맞다고 생각하고 정말로 딱 맞았을 뿐. 재밌다고 하고 좋아한다고 하며 즐겼을 뿐. 그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다고 비춰졌을 뿐. 무관심과 어떤 의미에서는 미운 털이 박혔다. 그래. 고등학교 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그저 막연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하목(夏目)이 순진한 바보와 같이 골계(滑稽)처럼 보였다. 나는 동기와 같이 문학 강의 때 분명히 같이 웃었다. 그게 진짜 타인들이 보는 나라고 느끼고, 나는 더욱 틀어박혔다.

나는 호숫가에서 문조(文鳥)를 읊었다. 이런 적막에는 허용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국의 말이 내 입에서 퍼져 나가는 소리에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나를 누가 찾을까. 누가 볼까. 누가 관심을 가질까. 나는 동경을 버리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동경(東京)은 살아 숨쉬고 있는 듯했다. 욕심을 조금 부리자면, 만약을 상상해 보자면 누가 이런 나를 동경할까 싶었다.

목요일은 시간이 맞지 않다. 금요일만이 가능한 일을 나는 기록하고 있다.

택배 기사든 병원에서든 오늘은 웬일인지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왔다. 금요일이지만 안 됐고, 목요일은 여전히 안 됐다. 시간이 전혀 맞지 않았다. 타이밍이 나쁘다. 이 말도 어디선가 흘러나온 직역이겠거니 하고 아침에 꽂힌 단어의 기원에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이름을 잘못 작성해서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지금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서서, 앞으로 걸어가면서 들을 나의 구두 소리에 정신이 팔릴 것이다. 넋을 잃은 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갈 것이다.

어젯밤 엄마가 생일이었다고 미역국을 끓여 놓고 나간 걸 아침 식사로 먹었다. 은행에서 지폐를 넣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산책을 하기로 했다. 그 전에 편의점에서 녹차를 샀다. 그걸 마시면서 사람이 별로 없는 오후의 길거리를 걸었다. 그저 내 구두 소리만 들렸다. 또각또각, 그리고 매화 나무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물가로 갔다. 벚꽃은 아직이었다. 그저 윤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윤슬이란 단어는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에게 듣고 알게 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언어와 관련된 수업은 늘 재밌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내가 초등학교 때 시조를 배운 건, 여기에 이사를 오고 전학을 오면서였다. 그렇게 시조 작가인 체육 선생님에게 내 시를 대회에 올렸다. 어린 아이가 참여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느꼈는지, 그다지 변변찮은 상을 받았다. 아마 학교에서 교장실로 불려서 그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시에서 내가 "왜" 그런 문장을 썼냐는 말에 나는 적당히 평범한 말을 했다. 딱히 뭔가 특별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지 그것 뿐이었다.

만약 이 글이 그저 그런 글이 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오만불손한 인간이 될 것만 같았다. 반대로 하나의 볼 만한 글이 된다면 그렇지 않은 인간이 될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