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雨

하루사메

by 한월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한동안 이 비가 온다고 하는데, 아마도 벚꽃이 이제 갈 생각인가 보다. 다음에 오기를 기약하고 있지 않는 벚꽃이지만 누군가는 그걸 기다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딱하게 여겨질까, 오히려 각자의 사정이구나 싶다.

벚꽃을 보면서 생각이 들었다. 그저께도 어제도 본 벚꽃을 보며 아름답다며 웃었던 걸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낙관적인 것 같다. 꽃잎이 눈처럼 흩날려서 겨울의 길이 눈으로 쌓인 것처럼 땅바닥에는 꽃잎이 쌓여 있었다. 남쪽 겨울은 땅에 눈이 쌓이는 걸 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대신 그 하얀 눈 대신 하얀 꽃잎이 땅바닥에 쌓인 걸 볼 수 있다. 어느 지역을 가든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하얀 꽃잎밖에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차가운 눈도 아름답고 햇볕에 따스해진 꽃잎도 아름답다. 하지만 그렇지 않게 되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고 들었다. 눈을 치워야 하는 입장이면 눈은 그저 방해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꽃잎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나는 그 흩날리는 꽃잎을 보며 왜 예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하면서 사실은 이해할 생각은 없는 사람들이 밉다). 그 알 수 없는 사람이 부럽다. 한량 같은 나에 비해 그런 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악착같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내 솔직한 마음은 이렇게 추악하다. 자신이 솔직한 건지 솔직하지 못한 건지 잘 모르겠다. 날 대체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당신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춰졌는지 나로서는 역시 알 도리가 없다. 그저 정확하지 않은 감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 솔직한 척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것만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말을 꺼내고 나서 다시 지울 생각을 하지 않고 의문을 가진다. 의외로 솔직한 사람이 나중에 손해를 덜 보는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솔직함은 어디까지나 좋은 의미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거나 과정이 틀렸다면? 틀렸다면? 잘못 된 게 아니라 완전히 틀렸다면?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면? 그건 죄가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죄를 또 하나 짊어간다. 책임져야 할 죄가 늘어났지만 실제로 내가 벚꽃을 볼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면, 아니 벚꽃을 보지 않고 금방 집으로 돌아 왔다면 어땠을까? 똑같았을까?

관심 없던 것도 관심 가져야 하는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거였다면? 나는 또 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되는 건, 그건 꽤나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나도 그 세계에 속하게 되었던가. 점점 더 그 세계로 가게 될 텐데, 그런 안일한 생각밖에 할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건 낯선 게 아니다. 몇 번이고 다른 세계로 갔다. 누구든지 말이다. 글에서 단정짓는 건 나의 나쁜 버릇.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괜한 말을 이런 곳에 썼다간 위험하다. 이런 곳이든 어느 곳이든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완벽하지 않을 거면 입을 다무는 게 상책. 완벽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입을 다물고 지켜만 보고 있으라는 건 다들 보통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만 굳이 대답을 듣고 싶지 않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만이 맴돌 뿐이다. 이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해 두고 싶다.

화법에서는 그 사람의 성격이 나온다. 아무리 차분한 글로 보여도 읽어보면 이 사람은 결국 이런 인간이구나 하고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이 글이다. 하지만 나는 그 글로 지금 손해를 볼 것이라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도 저들과 똑같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겨우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어린아이로서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과 어른으로서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난 지금 내 말투가 거칠어졌다는 걸 글을 쓰며 자신의 말투를 시각화하면서 깨달았다. 조금 더 선명하게.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게 터져서 흘러나올 것만 같다. 그러나 솔직하면 지는 것. 솔직해지기 전에 빈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계산적이고 잔인한 일인지 그리 단순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솔직해지기 전에 빈틈을 만들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아마도 이게 그 말들의 정답이겠지. 솔직해져라. 솔직하면 지는 거다. 이 두 문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말이 솔직해지기 전에 빈틈을 만들지 않는 것이겠지. 물론 저 문장에는 생략된 가정 상황이 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져라. 남에게 솔직하지 말아라. 나는 나, 남은 남. 이게 잔인하다고? 이제 그런 생각이 드는 시대가 된 게 뭐가 나쁜 건지 나는 모르겠다고 하는 순간 나는 아마도 더이상 이어지는 걸 포기하겠지. 그러기 전에 내가 그런 사고를 용납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나쁘냐고? 어쩌면 그 모든 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사람마다 선악의 기준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 사람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설득은 완벽하지 않으면 포기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말싸움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러면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말싸움을 하라고 하면 저급한 욕 몇 개밖에 말하지 못하는데 그게 통할 리가 없으니 갈등을 피해버린다. 그러나 냉정하게,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다면. 아니,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상황을 바로잡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은 쉽다. 늘 그렇다. 누구나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걸 읽고 쓸 수 있다고 해서 그 문장대로 따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건 설명서가 아니니까. 곳곳에 숨겨진 게 많다. 그렇기에 거짓말하고 속고 속인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지도 않지만 마냥 혐오하지도 않는다. 그래. 그게 뭐가 나쁜가. 어떠한 악이더라도 자신이 그걸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선이 될 수도 있는 법이 아닌가. 물론 대부분은 실패한다. 말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니니까. 어려운 일이니까. 그리고 누가 봐도 명확하게 하면 안 되는 짓이니까. 하지만 말을 바꿔보면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이니까 하지 않는다. 뭘 그렇게 얼빠져 있는 건가. 나는 지금 어느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 간다. 그런데 이래서야 누구에게 편지를 전하리.

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지금 봄비가 내린다. 봄바람이 세차게 불자 벚나무에서는 벚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흩날렸다. 팔랑팔랑 하고 공중에서 춤추다가 내려온다. 그리고 신록의 계절이 보이는 녹음들이 벌써 보인다. 봄의 냄새는 옅어져 간다. 여름의 냄새가 살짝 나는 듯하다. 언젠가 또 비가 올 것이다. 그때는 확실하게 여름의 냄새가 나겠지. 이 비가 끝나면 봄의 냄새도 서서히 옅어져 없어지겠지. 매화는 이미 잊은지 오래다. 벚꽃 또한 그렇게 가지만 매화보다는 강렬했으니.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제 겨우 20년 살았지만 언젠가 바뀔 것이라는 게 조금 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저 커다란 버드나무는 내가 10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아니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 눈앞에 그건 그대로 있다. 이 호수 유원지는 변함이 없다. 물론 많은 게 놓여 있다가 사라지고 했지만 매년마다 열리는 늦여름 축제도 변함이 없다.

바뀌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좋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마냥 좋지는 않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그 바뀐다는 건 지금 후자의 쪽이다. 지금 익숙해지고 있던 게 언젠가 없어지게 되고 사라지게 되는 게 왜 무서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다. 익숙한 게 쉽고 편하니까 그 변화가 막연하게 두려운 것이겠지. 이미 충분히 여러 가지로 불안한데 쓸데없는 것에 불안해 하다니. 불안해 하는 대상이 이런 게 아니라 다른 거였다면, 만약 공적인 것이었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 문제의 답은 대가로 대신해서 따라오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렇게 단정짓는다.

멈춰서서 뭐가 되는 건지 모르니까 죽고 싶어졌다. 이 말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런 말의 답에는 나도 그렇다 라고 할 것이다. 죽음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왜? 죽음이 왜 나쁘냐고 묻는 것도 아니라 정말 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걸까. 인류사의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던 거 아닐까?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자살이기에 더욱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겠지.

나는 지금 맥락을 연습하는 중이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을 것 같지만 일단 단어 하나에 신경쓰지 않고 적어내려 간다. 이것 저것 섞여서 신경쓰며 연습하는 건 어렵다. 그런 걸 만약 바로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재능이고 능력이란 걸 알아 주면 좋겠건만. 대단한 걸 대단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는 건 겸손도 기만도 아닌 무지일 수도 있겠다. 무지가 나쁜 건 아니다. 계속 말하지만 나쁜 건 없을 정도로 모든 게 다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 지 모를 것들 투성이라는 것이다. 그래. 그저 내가 구분을 짓지 못하는 것일 뿐이며 나는 구분을 짓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오늘따라 글에는 보풀이 엄청나다.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결국 결론은 무엇인지. 하지만 그렇게 놀라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늘 그랬으니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맡겨 두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내 생각을 적을 수 없었을 것이며 나는 계속 이 생각에 고통받았을 것이다. 결국 자기합리화가 돼 버린 이 글은 실패작이라고 해도 좋은 걸까. 아니면 그저 지리멸렬한 글에서 끝이 나는 걸까. 아마도 후자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확인도 하지 않고 자꾸만 뭔가 빠뜨리고 걸어간다. 불안한데도 계속 걸어가는 이유는 아마도 옆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걸 보고 초조해서 얼떨결에 무언가를 놓치고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겠지. 어쩔 줄 몰라서 내 속도를 잊고 다른 사람들이 가는 걸 보고 나도 눈치껏 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멀리 온 듯해서 후회가 된다. 저 사람들은 분명 생각이 있으니 움직였겠지. 너도 그렇고, --이도 그렇고, --이도 그렇고, --이 언니도 그렇지?

초심을 되찾아서 내가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대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은 형편일 수도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이걸 창작이라고 하고 예술 쪽으로 생각해버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사실은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잖는가. 나는 그저 정말 목적어 없이 기록하고 있는 사람일 뿐이었다는 걸 잊고 지내면 안 되겠지. 그건 결코 슬픈 일이 아니다. 그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하나를 인정한 거다. 진정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것보다 낫다. 무엇이든 집착하는 게 참 어리석고 무의미한 짓이지만. 그게 죄라면 죄, 업보라면 업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인간이니까. 아무 생각이 있든 없든 각자 인생을 살아가면 된다는 걸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도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차라리 약해빠진 모습이더라도 울 수 있다면 우는 게 낫다. 남을 공격하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 여기서 공격을 하든 밖에서 공격을 하든 결국 손해 보는 건 똑같다. 의견이 다른 건 이해 가능하지만 모든 걸 냉소적으로 보며 은근히 짓밟으며 위안을 얻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긴 한 걸까. 깨닫고 나면 어떤 모습일까. 절망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그저 어물쩍 넘어가려나. 비겁하게 후자를 택하지는 않겠지. 깨닫고 나면 적어도 나랑 같이 허무함을 느끼고 기차나 비행기 여행을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나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기에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굳이 열심히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저 사람들도 똑같은 인간이니까 그냥 우리 얼굴을 마주보고 즐겁게 있어 주면 안 될까 하는 나의 바람이다. 이상론. 참 낙관적이다. 역시 어화둥둥 자란 도련님, 아가씨 답다. 갈등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내가 갈등을 피하게 된 이유도 조금은 알아 주면 좋을 텐데. 왜냐하면 전부 우리가 다 공범이니까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인간이기에 공범이라는 건 아니다. 공범이지만 결국 똑같은 인간이기에 자비라는 소리다. 참 형편 좋은 말이다.

이 글이 어떻게 읽혀질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글을 쓴 나도 어떻게 보여질 지 모르겠지만. 미에키치가 말한다.

"뭐, 새를 봐 보세요. 예쁘지요?"

나는 그의 말에 빌려 이렇게 말한다.

"뭐, 벚꽃을 봐 보세요. 예쁘지요?"

그러면 소세키는 "그렇네. 예쁘다."라고 대답했다. 일부러 하나하나 이런 반응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남쪽에서는 벚꽃이 다 지게 하려는 봄비가 내리고 있으니까 대신 이렇게 말해볼까.

"뭐, 이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어 보세요. 어떠세요?"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안 들릴 말과 소리. 그러나 만약 잠시라도 이 글을 보고 이 말에 대답이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은 또 다행히 조금이라도 수습한 것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나는 비겁한 겁쟁이라서 늘 이런 식의 글은 결코 반갑지 않겠지만. 더이상 참지 못해서 결국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마음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침의 봄비와 함께 이걸(글 작성)로 잠을 깨고 손을 푸는 건 이 정도로만 해두자. 이걸로 충분하니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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