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일기

봄매화

by 한월

어제는 저녁에 잠들어버리고 밤중에 깨어나니, 아침이 밝도록 잠을 못 잤다. 아침 9시쯤이 돼서야 잠이 들었다. 내일은 개강 전 기숙사 입실을 위해서 창원에 가야 된다. 아마도 이게 밤을 샌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타지에 가서 대학 생활을 하는 건 솔직히 새내기 시절부터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역시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 무리였던 것일까. 거기서 설마 공황발작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가다니.


나는 여태까지 금요일에 강의가 없었던 덕분에 매주 목요일마다 대구의 본가로 갔다. 그리고 다시 창원으로 돌아가야 할 때 기차역으로 가면 미친듯한 불안감이 덮쳐온다. 머릿속으로는 신경쓰고 있지 않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해도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소화기관이 마비된 듯이 모든 게 답답하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꾸준히 약을 먹고 있지만 이 현상만큼은 완전히 억누를 수 없다. 당연한 거지만. 대신 약을 먹지 않은 것보단 낫다. 만약 약을 먹지 않았다면...... 딱히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때만큼은 약을 먹어도 공황발작 증세가 멈추지 않는다. 불쾌하다. 하지만 괜찮다고 억지로 웃어 보이려고 한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이 불안감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으니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도 어렵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할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좋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왠지 모르게 그 행위를 하는 건 어색하고 거북했다. 그래도 몸에 덜 부담이 가게 해주는 건데 말이다. 숨을 고르고 내쉬는 건 왠지 모르게 병약한 몸인 걸 인정해버리는 것 같은 이상한 자존심이 솟아 오른다. 그럼에도 막상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들으면 오히려 그게 도움이 된다. 적당한 긴장감으로 강의에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당연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예를 들자면, 문학 강의 시간이라든가. 사실 어떤 강의든 전공 강의라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지만, 그렇게 하기 싫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올해는 꽤 봄이 이른 것 같다. 오늘이나 해서 날씨가 흐린 적도 있지만 계속해서 며칠 동안 따뜻한 날이 지속된 탓에 일찍이 매화를 볼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매화를 보지 못하고 창원으로 가곤 했다. 그게 너무나도 아쉬웠다. 그만큼 작년 겨울은 추웠던 거겠지. 아니, 올해 겨울이 유난히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거겠지. 어쨌든 올해는 매화를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고3 때 이사를 온 집 주변, 바로 앞에 공원이 있지만 거기에는 매화 나무가 없다. 그래서 그전에 살았던 동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전에 살았던 동네에는 공원이 두 개 있었다. 둘 다 매화 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벚꽃이 피기 전 매화의 꽃봉우리와 이미 피어난 꽃을 볼 수 있다. 키가 작은 매화 나무가 있어서 근처로 가면 매화의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게 더할 나위 없이 나한테는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 공원 근처에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가 있다. 따뜻한 봄날이 되면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방과후 노을 질 무렵에 고양이와 네잎클로버, 그리고 매화와 벚꽃이 있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미소지었다. 한적한 공원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한 장소였다. 동시에 친구들과 함께 노는 장소이기도 했다. 별로 특별한 건 없지만 공원이란 장소는 지금도 왠지 모르게 자유롭게 느껴졌으니까.


매화를 보러 굳이 그 동네까지 가지 않아도 근처 유원지에 키가 큰 매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물론 그 동네나 유원지나 지금 살고 있는 본가와의 거리는 불과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거기도 역시 매화가 피어 있었다. 땅에는 매화 꽃잎이 떨어진 게 보였다. 이곳에 매화는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그게 나한테는 이유 모를 안식처 같이 느껴졌다. 매화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을 바라봤을 것이다. 그중에는 나도 포함돼 있겠지. 매화는 날 기억할까. 매화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던 토끼풀과 정자(亭子), 벚나무도 모든 걸 지켜봐 왔겠지. 내가 여기에 오기 전부터 살고 있던 친구도 봐 왔겠지.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믿고 싶은 상상. 실제로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나는 조금 고소(苦笑)한다.


아무튼 초봄이 돼서 매화를 보러 가는 건 나만의 루틴이 된 듯하다. 예전에는 벚꽃과 매화를 혼동했던 적이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벚꽃이라기보단 순백했다. 벚꽃은 좀 더 옅은 보라색과 분홍색을 띠고 있지만 매화는 훨씬 더 옅은 색이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벚꽃이 아닌 것에 대해서 실망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초봄에 벚꽃이 피어날 리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 살던 집 담벼락에도 매화 나뭇가지가 뻗어 나와 있어서 집에서 나올 때마다 매화를 볼 수 있었지만, 집주인이 전부 베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무리 사소하고 소박한 것이었지만 외관 상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원래 심어져 있던 것을 잘라버리다니. 그래도 나는 그 집주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는 아무런 권력이 없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말버릇이 "우리한테는 힘이 없다. 위쪽의 명인데 어쩔 수 없지."였다.


그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 아마도 그 시절 내 손에는 나츠메 소세키의 「그 후(それから)」가 들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알렉산드르 솔체니친의 「암 병동」이 들려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동화책을 만들거나 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지금보다 낫다. 지금은 독서를 거의 하지 않다시피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독서에 시간을 쏟지 않게 됐는지,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한 뒤였을까.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다. 그 유명한 「인간실격」을 이과인 반 친구와 돌아가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환독서였다. 읽고 감상을 이야기하고 나는 작가 다자이가 아닌 인간 다자이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다자이뿐만 아니라 여러 일본 근대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 친구도 독서를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통하는 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 당시 「슬픈 인간」이라는 책을 즐겨 읽었다. 지금도 애독서로써 간직하고 있다. 일본 근대 작가들의 수필을 엮은 책인데 일본 근대 작가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엄청난 책이었다. 수능이 끝난 뒤에는 「작가의 마감」이라는 책을 사서 필사하곤 했다. 그것 또한 수필집이었다.

사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필집을 필사하는 걸 좋아했다. 거의 일본 근대 문학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에게 일본 근대 문학 자체가 잘 맞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집에는 직접 산 일본 소설이 많이 있다. 일본 소설 뿐만 아니라 근대 한국 문학도 나름 있다. 윤동주, 백석, 이상, 박태원, 김유정 등등……. 예전에는 책을 사면 금방 읽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저 수집하는 것밖에 더 되지 않게 돼버렸다. 그럼에도 읽으려고 했다. 특히 어떻게든 아쿠타가와를 읽으려고 했지만 어리석게도 다자이에게만 집중했다. 차라리 처음 근대 일본 문학 입문으로 나츠메를 읽었던 것처럼 나츠메로 쭉 갔으면 좋을 텐데 하고 조금 후회 중이다. 생각보다 집에는 나츠메의 소설은 두 개밖에 없다. 「그 후」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인데, 제일 중요한 「산시로」나 「마음」, 「도련님」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는지...... 심지어 그 유명한 헤르만 헤세도 읽지 않았다. 「데미안」을 읽지 않은 것이 조금 크지만 그때는 정말로 일본 소설에만 심취해 있었다. 지금 와서도 놀라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본 소설을 좋아했다. 순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학이었지만. 장편을 나름 좋아했다. 요네자와 호노부를 유난히 좋아했다. 특히 고전부 시리즈를말 좋아했다. 다음 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목 빠지게 기다린 책,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까지 손에 넣었지만 결국 읽다가 말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니토리 고이치의「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도 정말 좋아했다. 아마 쉬는 시간이 끝난지도 모른 채 계속 읽다가 선생님에게 주의를 들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저 기억 왜곡인 걸까. 아무튼 그만큼 책을 좋아했다. 스미다 요루, 사노 테츠야와 같은 느낌의 작품을 좋아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표지에 이끌려서 산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밌었다. 그나저나 왜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아마도 개강 후 듣는 강의가 거의 문학 강의가 주라서 그런 듯하다. 걱정이 태산이다. 수박 겉핥기 식의 이런 지식이 도움이 될까 하고. 이미 2학년 때 문학 입문을 들었을 때 할 만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쿠타가와의 유작, 「톱니바퀴」이 예습, 과제, 기말이었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이런 감상이 나올 만하다. 당연하지만 전부 원문이다. 아오조라 문고에 있는 원본에 루비라든가 현대 일본어에 맞게 표기돼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원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았다. 또, 교수님 덕분에 따로 일한사전까지 샀다. 사실, 대학 입학 전 고등학교 시절에 원어 소설을 공부하려고 산 교제가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용이나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시는 해볼 만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대나무」라는 시는 유명하다. 그만큼 인상깊게 읽었고 반복해서 읊었다. 중요한 건 아직까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문학사 강의는 1학기에 일본 근세까지를 다루니까 말이다. 근대만 즐겨 읽었기에 고전은 약하지만, 고전도 나름 강의를 듣다 보면 재밌는 게 많다. 일본 문화, 매체 등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요소가 고전에서 가져왔다는 걸 알았을 때 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근대로 넘어가게 되면 내심 마치 전문 분야가 나왔다! 하면서 나에게 있어서 문학 강의 시간은 덕질 시간에 가까웠다. 단순 팬을 넘어서 오타쿠의 부심으로 강의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또 그럴 순 없어서 수치스러운 기억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수박 겉핥기 식의 지식으로는 아는 척밖에 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이라도 아니까 다행인 건가.


올해는 문학으로 넘쳐 흐르는 일상이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기대랄까 희망이랄까 단순히 해본 말이지만.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나니, 정말 추억이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의 이야기를 풀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내 삶은 문학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다자이의 인간실격을 각각 다른 버전으로 손에 쥐고 있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총 세 권이 있지만, 한 권은 영문으로 돼 있다. 해외에서는 유명한 표지의 책. 그리고 또 다른 한 권은 초판본 표지다. 이제는 다자이에서 벗어나서 아쿠타가와나 특히 나츠메를 탐구하고 싶지만 다자이가 나한테 잘 맞았는 건지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다. 이번 학기에 아무리 이 세 명을 공부한다고 해도, 실제 코앞에 있는 건 나츠메가 위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매화를 보며 내 눈에 보이는 건 다자이였다. 친우에게 매화 나뭇가지를 받은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벚나무와 마술피리, 앵두 같은 이야기를 썼음에도 그의 손에는 매화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정말 그의 손은 마치 순수한 할아버지의 손이라고 해도 좋을까. 지나가는 노인의 손에 매화 나뭇가지를 건네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 노인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매화 나뭇가지를 건네받고 하염없이 그걸 바라보는 그림. 나는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보이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 흑백으로 된 사진이지만 나는 전혀 슬프지 않다. 오히려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웃고 있지 않아도 좋아. 화내도 좋아. 울상을 지어도 좋아. 즐거워하지 않아도 좋아.

나는 다음 꽃을 기다린다.

벚꽃을 기다리고 녹음(綠陰)을 기다리고 국화를 기다리고 동백을 기다린다.

그렇게 또 1년이 공허하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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