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야시 타키지의 <감방수필>

감옥에서 만난 조선인 동지, 이불과 눈깔사탕

by 한월

*코바야시 타키지(小林多喜二) 1903년~1933년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 중 한 명으로 일본의 좌파 소설가이다. 1903년 10월 아키타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07년 고바야시 일가는 가난을 피해 홋카이도로 이주한다. 그는 노동자 거리의 극히 가난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백부의 도움으로 오타루상업학교에 진학한다.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때부터 교우회지를 편집하거나 중앙 잡지에 작품을 투고하거나 하면서 일찍부터 발휘된다. 1921년, 역시 백부의 도움으로 오타루고등상업학교에 입학한다. 이때는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이라는 세계사적인 변동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이 새롭게 대두하기 시작한 때로, ≪씨 뿌리는 사람≫이 창간되고,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의 조직적인 전개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1924년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 오타루 지점에 취직한다. 그는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정의감에 차 있었지만, 점차로 사회적 근원을 추구하면서 비판적 현실주의로 나아가, 하야마 요시키와 고리키 등의 작품을 통해 프롤레타리아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27년경부터 그는 사회과학을 배우면서 사회의 모순을 알게 되고, 그 후 오타루의 노동운동에 직접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에도 적극적인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28년 3월 15일 일본에서 비합법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단체가 큰 탄압을 받게 된다. 소위 3·15사건이다. 오타루에서도 2개월에 걸쳐 500명 이상이 검거되어, 다키지 주변의 친구와 동지들이 다수 체포되었다. 그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구라하라 고레히토의 영향을 받아 완성한 처녀작 ≪1928년 3월 15일≫은 이 사건을 취재한 것으로,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과 경찰의 참혹한 고문을 폭로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의 불굴의 정신력과 이것에 대비되는 천황 지배 권력의 잔학성을 폭로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했다. 그는 이 작품을 잡지 ≪전기≫(1928)에 게재하며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문학 활동에 들어간다.


다키지는 1929년 북양어업의 실상을 취재해 ≪게잡이 공선≫을 완성한다. ≪게잡이 공선≫은 그의 대표작으로,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뿐만이 아니고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키지는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는다.


*감방수필에서 알 수 있듯이 코바야시 타키지는 비합법적인 운동을 하다 잡혀온(아마도 독립 운동 또는 자신과 같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등) 조선인을 보고 '동지'라고 하는 것에서 그는 아무래도 그 당시 식민지였고 독립 운동이 한창이었던 조선에 대해서 악감정을 품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코바야시 타키지는 나가노 시게하루(中野重治, 1902~1979)와 도쿠나가 스나오(德永直, 1899~1958)와 명분이 깊은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사람도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였다. 아마도 같은 뜻을 가지고 친분이 두터워진 것이다. 이 세 명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작가들 중에서는 나가노 시게하루가 가장 오래 산 편이다.


(사진은 나가노 시게하루이다.)


*코바야시 타키지의 대표작인 "게잡이 공선"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 이른바 "게어선"으로 제목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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