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이고 구시대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
며칠 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갈 무렵 샀던 블루투스 키보드를 찾았다. 이사하면서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포기했지만 다시 찾아서 이걸로 나의 글을 기록할 수 있다니. 이 키보드는 옛날 구식 타자기의 형태를 띄고 있어 투박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키보드의 색상이 민트색(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 같은 색깔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이 조금 색바램으로 더욱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정말 오랜만에 이 키보드를 쓰는 거였지만, 손에 착착 감기는 게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이 키보드로 "인간실격"이라는 글 따위의 푸념을 맘껏 늘어놓는 장문을 여러 썼기 때문이겠지.
어떤 키보드는 다른 키보드보다 소음이 그나마 적고 얇아서 가지고 다니기는 편하지만, 키보드의 키가 너무 납작해서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거나 하는 건 힘들다. 이 키보드의 장점 중 하나가 소음이 적다고 했는데, 이 소리마저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건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정도의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에게 시비가 걸려 머리채가 잡혔다. 강력히 주장하며 못을 박아 두지만 결코 쌍방의 몸싸움이 아니다. 그럼에도 혹자는 계속 나의 잘못이라고 할 것인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글은 그저 속된 말로 '중2병에 걸린 찐따' 같은 느낌이다. 전혀 예술성이라든가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나의 글을 보고 좋아해주는 독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가 내 글을 보고 가독성 하나는 좋다며 몰두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글이라며 감상을 늘어놓았다.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은 건 좋았다. 하지만 역시 내 글은 아직도 투정을 부리며 장난감을 갖고 싶어하는 철부지로 보이는가?
나의 진심은 그저 단 한 가지. 표준대국어사전에 따라 원칙을 지키며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딱딱하고 까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고지식한 성격과 고집 때문이리라.
그나저나 해는 저물어 가고, 창밖으로 달이 보인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방에서는 커다란 창문이 있고, 그 너머로는 달이 잘 보인다. 나는 이 창문이 꽤 마음에 든다. 게다가 창문 쪽으로 침대가 있어서 더욱 감성적인 느낌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당시 나는 문단을 나누면서까지 글을 써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가독성이 좋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이런 쓸데없는 글에 정성을 들여 굳이 굳이 가독성을 높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속기사 쓰듯, 빠르고 간결하게. 아니, 한꺼번에 써버리고 싶다.
그나저나 오늘은 덥다. 열대야. 에어컨을 거의 항시 가동 중이지만, 아직도 땡볕에 있는 것 같이 뜨겁다 못해 피부가 따가울 정도다. 그게 딱 정확한 표현인 듯하다.
또다시 글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직접 손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힘들다. 익숙하지 않아서 손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언제는 아이패드에 애플펜슬로 굿노트의 한 페이지를 꽉 채울 정도로 생각나는 대로 문장을 적었었다. 일시적이었지만 그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다시 써보려고 해도 글씨체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마구 휘갈겨, 날라가버리고 만다. 게다가 글씨의 크기가 커져선 투박해 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강의 시간에 교재나 유인물 따위에 지금 생각나는 모든 말(문장)을 적었다. 그건 가히 욕구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고, 나는 그 욕구를 억제할 수 없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의 불길을 빨리 진화시키고 싶었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이 페이지에 나의 문장으로 가득 메꾸고 싶었다. 지금도 그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건 천성이리라. 여유가 있으면 항상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를 손에 놓는 날이 없다. 한번 글을 쓰게 되면, 어느샌가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게 일상이다. 한 시간은 기본으로 글을 쓰는 데에 삼매경이다.
이런 게 천성이라고 말했으니, 혹시 재능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적의 논리를 펼쳐본다. 그렇다면 그러한 걸로 어디에 써먹으면 좋으라는 것인지 나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작가? 번역가? 출판사의 편집자?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미 인공지능이 정복하지 않았던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그 다음의 경지로 오르게 된 셈이다. 나는 이러한 사실에 불만이 많다.
내가 보수적이고 고지식하여 구시대적인 것만 추구한다고 비난해도 좋다. 또, 극단적이라고 해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한번 떠들어 보고 싶은 것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얻는 건 결국 평화로움을 포장한 편안함이 아닌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안녕(安寧)을 추구할 거면 인간의 본질적인 모든 것을 부정하여, 인간을 포기하는 게 좋지 않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손발을 나태하게 두는 것이 과연 인간일까? 그 수족이 그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에만 쓰여져야만 한다고? 누군가 아날로그도 필요하며 가치가 있다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있으니 언어와 예술이 마냥 이제는 필요 없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언어와 예술이라는 학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이상적인 말로 들린다.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는 게 좋다곤 해도, 냉정하게 보자면 이미 그런 것도 인공지능이 따라잡은 듯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아 완벽하게 일을 해내도, 인간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건 분명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심할 정도로 의존하며 자신의 힘은 전혀 쓰지 않은 채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인공지능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인간의 최후는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어울리지 않겠나? 그리 생각하니 유쾌하다.
적어도 인간의 욕망, 욕구, 감정(광기), 철학만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클리셰 덩어리 인스턴트 소설은 아마도 인간은 더이상 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간은 앞으로 오로지 철학이라는 모든 학문의 창시자만으로 심연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건 모든 문학에 무조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저 오락과 유희를 위한 인스턴트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게 참 이상하지 않은가?
각설하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본질적인 무언가를 분명 따라잡을 수 있을까? 또, 모두가 인간적이지 않으니 인간적인 걸 자연스레 추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좋은 게 좋은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은 죽으라고 하면 진짜로 죽을 것인가? 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