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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5. 2022

정민의 『습정』(2020)

마음을, 지키다

읽은 날 : 2020.2.29(토)~3.5(목)

쓴 날 : 2020.3.18(수)

면수 : 280쪽

* 2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코로나19로 개학이 밀리고 또 밀리던 일을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개학 2주 연기! 근무조날 오후 2시에 선생님들과 교육부 장관 담화 듣다 멍해졌습니다. 대통령 탄핵, 남북정상회담과는 또 다른 역사의 한순간. 예상은 했지만 마음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던 일 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니 "엄마 치킨 사 주세요" 막내 잘 때 언니들에게 맡기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치킨 기다리며 3월 초에 읽은 책을 다시 열었습니다.



표지 글이 좋아 오래 읽었습니다. <정민의 세설신어>로 묶은 예전 책보단 글이 어렵지만 꾹꾹 새겨 읽었습니다. 개학이 1주일, 또 2주일 늦춰지면서 학교 일, 집안 일에 괜시리 바쁘고 이런저런 걱정에 머리가 복잡해지면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습정' 두 글자가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이번 책은 정민 선생님 책 중에선 문체가 차가운 편입니다. 어떤 곳은 읽다 보면 얼음 같습니다. '수업 준비해야지' 마음만 바쁠 때 "바깥에서 3년 묵은 약쑥만 찾아다니느라 7년이 지나도록 쑥은 못 찾고 병만 깊어졌다."(155쪽)는 따끔한 일침이었고, "사람은 사소한 일조차 소홀하게 대충 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한 가지 일에서 그 사람의 바탕이 훤히 드러난다."(246쪽)는 하던 일을 더 꼼꼼하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충고에는 맺고 푸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시작해야 할 때다."(156쪽) 이 말씀에 용기 얻어 부서 계획서 마무리하고 올해 학습활동지도 하나하나 만들어 갑니다. 아이들 휴업(저는 재택근무)이 길어져 크고 작은 신경전이 밀려올 때도 책 읽으며 마음 풀고 조금 더 너그러웠습니다.


4월 6일 개학 앞두고 무엇부터 시작할까 생각합니다. 일단 학기 중에 할 일 중 미리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고, 아이들 마음도 도담도담 챙겨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아주 잠깐이라도 틈틈이 책 읽고 자료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생각의 중심추를 잘 잡아"(5쪽) "날마다 조금씩 쌓여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진실의 목소리에 더 낮게 귀를 기울이"(5쪽)기 위하여.


<마음에 남 글>


생각의 중심추를 잘 잡아야 한다. 날마다 조금씩 쌓여가는 것들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진실의 목소리에 더 낮게 귀를 기울이고 싶다. 5쪽


언행휘찬(言行彙纂)의 한 대목.

"한가할 때 허투루 지나치지 않아야, 바쁜 곳에서 쓰임을 받음이 있다. 고요할 때 허망함에 떨어지지 않아야, 움직일 때 쓰임을 받음이 있다. 어두운 가운데 속여 숨기지 않아야, 밝은 데서 쓰임을 받음이 있다. 젊었을 때 나태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늙어서 쓰임을 받음이 있다. (閒中不放過, 忙處有受用. 靜中不落空, 動處有受用. 暗中不欺隱, 明處有受用. 少時不怠惰, 老來有受用.)" 20쪽


용은 자신을 감추기에 그 존재가 귀하다. 푸른 바다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21쪽


어찌 보면 잘 살피는 일은 잘 덜어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46쪽


가을은 수렴의 계절, 손에 쥔 것 내려놓고 닥쳐올 추운 겨울을 기다린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때를 맞이하려고 나무마다 저렇게 환하게 등불을 밝혔구나. 59쪽


차곡차곡 쌓아 켜를 앉힌 것이라야 깊이가 생겨 오래간다. 그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113쪽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해야 식견이 자랄 수 있고, 다루기 어려운 사람을 다뤄봐야 성품을 단련할 수가 있다. 배움이 그 가운데 있다. (處難處之事, 可以長識. 調難調之人, 可以煉性. 學在其中矣). 118쪽, 서정직, 치언(恥言)


송나라 때 구양수(歐陽脩)는 후진들의 좋은 글을 보면 기록해두곤 했다. 나중에 이를 모아 문림(文林)이란 책으로 묶었다. 그는 당대의 문종(文宗)으로 기림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후배들의 글을 이렇듯 귀하게 여겼다. 130쪽


예화가 신선하고 설명이 알기 쉬워, 심신수양서로 알고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어느새 신앙이 싹터 있곤 했다.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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