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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5. 2022

박수밀의 『오우아』(2020)

맑고 따뜻한 책

읽은 날 : 2020.5.2(토)~5.3(주)

쓴 날 : 2020.5.3(주)

면수 : 299쪽

* 2년 전 글을 다듬었습니다.

 

"신간 보다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책 많이 읽는 블로그 이웃님 말씀에 '우와!' 한 며칠 두근두근하다 주문한 책이 생각보다 빨리 와 바지런히 읽었습니다. 이덕무의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에서 담았을 '오우아' 세 글자가 반갑고, "책의 등장인물들은 남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 남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갔다"(6쪽)에는 나직한 힘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옛글이 갖는 힘을 발견하고, 마음이 맑아지는 경험이 일어나길 기대한다"(8쪽)에 설레고 촉촉해졌습니다. 한동안 책을 못 읽었고 마음에 물기가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 그 시간을 불안해하지 말고 옛사람처럼 고요히 즐겨보자"(9쪽)는 말처럼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이웃들을 위한 위로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문에서 본 글도 있고, 월간 『샘터』에 연재된 원고도 보입니다. 마흔 다섯 편에 실린 글과 삶은 다르나 모두를 아우르는 주제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지키며 맑고 당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울림 있는 삶을 따라 읽다 보면 그 한자락이라도 닮아갈 수 있을까요. 가만가만 책장을 넘겼습니다.

 

<행복의 비결, 자족>과 <마음에 꼭 드는 날에>를 오래 읽었습니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장혼과 이덕무는 평행이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꼭 닮았습니다. 가난한 시인이었고, 꼼꼼하고 성실했으며, '적게 욕망하고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알았던 사람'(22쪽)입니다. 산자락 낡은 집에 '이이엄(而已广 그뿐이면 족한 집)'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인 장혼과 복숭아나무 아래서 아이와 나뭇잎에 글씨 쓰던 하루를 한 자 한 자 담아낸 이덕무의 글은 고맙고 뭉클합니다. <평생지>와 <만제정도>를 요즘 말과 눈빛으로 따뜻하게 풀어낸 번역과 해설도 참 좋습니다.

 

같은 작가님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책이 잘 안 읽힐 때, 무언가 방향을 잡고 싶을 때 책 속의 글들이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번에 가장 고마웠던 말은 "나이 들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면, 어둠을 밝히려는 소망을 잃지 않는다면, 나이 든다는 것은 기쁨과 설렘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일이 될 것이다"(177쪽)입니다. 새벽 세 시쯤 책장을 덮으면서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을 공책에 옮겼습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을 지킬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참된 인간이다."(298쪽)

 

<마음에 남글>

 

근래 한 드라마에서,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에게 백발이 성성한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는 살면서 언제가 제일 행복하셨어요?"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온 동네에 다 밥 짓는 냄새가 나면 나도 솥에 밥을 안쳐놓고 그때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우리 아들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가요. 그럼 그때 저 멀리서부터 노을이 져요.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때가." 46~47쪽

 

남을 변화하도록 만드는 힘은 억지로 강요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바뀌는 데 있다. 깨끗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도 삿된 마음이 없어진다. (중략) '나의 맑음'은 한 사람의 곧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모두를 깨끗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64쪽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은 먼저 나 자신부터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65쪽

 

모든 존재는 각자 쓰임새와 역할이 다를 뿐 그 가치는 동등하다. 이것이 더 낫다거나 저것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각자 상황에 적합한 쓸모가 있을 따름이다. 의사는 병을 고쳐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고, 환경미화원은 우리 사는 지구를 깨끗하게 만들어 세상에 공헌하는 것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세상은 한층 아름다워질 것이다. 189쪽 

 

수로 부인은 꽃을 꺾어 가지려 했지만, 이옥은 꽃을 놓아주려 했다. 수로 부인은 꽃을 좋아한 사람이었고, 이옥은 꽃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206쪽

 

바야흐로 큰 것만을 좇는 세상이다. 큰 집을 동경하고 큰 차를 바라며 큰 마트를 간다. 큰 권력을 좇고 큰 명예를 구하고 큰 이익을 따라간다. 욕망이 커질수록 '작은 것'은 놓일 자리가 없다. 우리 시대의 똥은 어디에 있는가? 간이역 앞 시골 읍내, 염천교 옆의 구두 거리,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의 낡은 옷, 새벽 어스름에 밭이랑을 매는 어머니의 부르튼 손, 시골의 낡고 작은 교회 예배당, 가난한 청년의 어눌한 고백, 그리고 느릿느릿 달팽이의 움직임! 216~217쪽

 

큰 뜻을 품고 사는 사람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이웃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다. 자기 문제에서 벗어나 이웃과 사회를 위해 근심할 때 티격태격 다투는 일들이 소소해지고 더욱 넓은 마음을 소유한 사람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280쪽

 

마음이 성숙한 사람은 내면이 스펀지와 같아서 자신을 향한 먹물을 안으로 흡수할 줄 안다. 거센 바람보다는 따뜻한 햇볕이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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