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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한문샘 Oct 04. 2022

박수밀의 『열하일기 첫걸음』(2020)

집단 지성의 힘, 날개를 달다

읽은 날 : 2020.6.25(목)~6.29(월)

쓴 날 : 2020.7.2(목)

면수 : 315쪽

 

열하일기 완독클럽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 오프라인 강의는 못 들었지만,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후기와 사진 보면 랜선 수강생이 된 듯했습니다.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는 분들 덕분에 사놓고 못 보던 열하일기 1~3권 다 읽었는데 보고 또 봐도 어려운 부분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열하일기 첫걸음 나왔을 때 더 반갑고 새로웠습니다. 밑줄 긋고 가끔 별표 그리며 공부하듯 읽었습니다. 

 

이 책은 한 연구자의 25년 공부를 아우른 열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의 발자취는 아닙니다. 오랜 공부가 강의 열 두 편으로, 강의가 책으로 다듬어지기까지 여러 어른들의 손길과 마음이 있었습니다. 더 깊고 쉬워진 글, 종이에 갇히지 않고 옛날과 오늘날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열띤 질문과 성실한 답변, 열하 답사 네 번의 결실입니다. "열하일기 완독클럽과 열하 여행에 함께 참여한 인연들도 이 책의 공동 저자다."(8쪽) 그런 면에서 이번 책은 집단 지성의 힘입니다. 

 

열하일기 첫걸음은 친절한 안내서입니다. 여정과 작품명을 요약한 3단 지도, 78~81쪽 주요 등장 인물, 303~305쪽 권별 구성 요약 보다 감탄! "이 책이 더욱 빛난다면 편집자 덕분이다."(8쪽)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행간에도 자세한 설명이 보입니다. "'막북(漠北)'은 사막 북쪽이란 뜻으로, 만리장성 북쪽 변방을 말한다. '행정(行程)'은 여정이란 의미다. 곧 '막북행정록'은 만리장성 북쪽의 열하로 가는 여정이라는 뜻이다."(168쪽) 따라 읽으면서 재작년에 못 본 부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면이 더 잘 들어왔습니다. 

 

책을 거의 다 읽을 즈음 연암이 열하 다녀올 때 제 나이였단 사실에 놀랐습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동갑내기 연암 읽다 '나는 뭐했지?' 하지만 괜찮습니다. 모르면 배우고 알아 가면 되니까요. 그런 면에서 열하일기열하일기 첫걸음은 제 삶에 소중한 마중물입니다. "무지함을 스스로 아는 사람들은 배움으로 채워질 수 있기에 결국 지혜로워진다."(복주환, 생각정리스킬, 153쪽)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남은 글>

 

연암이 젊은 시절에 겪은 좌절과 상처는 인간의 마음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리하여 예리하고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 갈 수 있었다. 19쪽

 

공부는 홀로 걷는 외로운 길이면서 함께 맞잡고 갈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연대의 길이기도 하다. 20쪽 

 

열하일기 초고본에는 '연행음청기'(燕行陰晴記)라고 썼다. 음청(陰晴)은 흐린 날과 갠 날이라는 의미로 날씨를 의미한다. 이를 열하일기로 바꾼 것인데, 바꾼 제목 때문에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왜 오랑캐 땅 이름 '열하'를 책으로 썼냐는 트집이었다. (중략) 

하지만 연암은 지나가 버린 남의 나라 수도 이름을 쓰면 명칭과 실상이 뒤죽박죽되어 지저분해진다고 말한다(「창애에게 답하다」 중에서). 실질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 사람이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열하까지 갔고, 열하에서 경험한 일을 주로 이야기했으니 열하라는 명칭을 썼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36, 37쪽 

 

연암은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성찰의 시선을 갖자 비로소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본래의 나로 돌아온다. 57쪽 

 

중국은 똥을 황금처럼 아꼈다. 실제로 중국은 일찍부터 분뇨 처리 기술이 발달했다고 한다. (중략) 청나라 말기에 북경에는 똥 나르는 상인들이 상당한 규모로 발전하여 분변을 수집하는 가게(도호상道戶商)와 똥 공장(분창糞廠)을 열어, 분변을 대량으로 사고팔았던 장사치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똥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조선, 똥을 소중한 자원으로 이용하는 중국. 연암은 여기에서 문명의 차이를 이해했다. 131쪽 

 

지혜로운 눈을 지닌 밝은 자는 작은 것을 본다. 136쪽 

 

배경과 정황을 묘사하기로 표현하여 인물의 심리를 대신 보여 주면 독자가 작품에 직접 개입하여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174쪽

-> 이 글 읽고 글 쓰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연암은 견마잡이 풍속을 통해 잘못된 습속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조선 사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했다. 습속의 위험함을 말한 연암은 그 자신이 손수 말의 고삐를 푼다. 189쪽

 

강(綱)은 벼릿줄이란 뜻으로, 고기 잡는 그물의 코를 꿰어 그물을 잡아당길 수 있게 한 동아줄이다. 벼릿줄이 없으면 그물을 하나로 모을 수 없다. 인간 사회에 비교하자만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범이다. 그물이 벼리를 벗어날 수 없듯이, 인간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도덕과 규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세 개의 벼릿줄, 곧 모든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세 개가 삼강의 윤리다. 199~200쪽

-> 열하일기 첫걸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자세한 설명입니다. 읽다 보면 잘 몰랐거나 대충 알던 걸 새롭게 알아가게 됩니다. 

 

연암은 말 위에서 졸면서도 중국인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무엇을 질문할까를 고민했다. 수십만 마디의 말, 문자로 쓰지 못한 글자가 가슴속에선 날마다 여러 권 만들어졌다. 그는 천상 문장가였다. 그와 같은 기록 정신, 관찰 정신, 호기심, 사색의 태도가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를 만든 힘이었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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