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금년에 과거 공부에 얽매여
옛사람의 시와 산문이 있어도 보고 읽을 겨를이 없었다.
중양일을 맞이하여 비로소 문자에 마음을 두어,
책을 손질하고 붓과 벼루를 씻은 다음
『중용』 읽는 틈틈이 옛날과 지금의
자(子), 집(集), 시와 산문을 같이 보려 한다.
이날부터 마음에 얻은 것을 날마다 기록하여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는 규칙으로 삼으려 한다.
- 이덕무, 『관독일기(觀讀日記)』
余今年爲擧業所縛纏, 雖有古人詩書, 不隙觀且讀焉.
여금년위거업소박전, 수유고인시서, 불극관차독언.
重陽日, 存心文字裏, 掃拂卷帙, 湔洗筆硯,
중양일, 존심문자리, 소불권질, 전세필연,
于以讀中庸有暇, 旁觀古今子集詩文.
우이독중용유가, 방관고금자집시문.
自此日爲首, 凡有得逐日書之, 以就靜養規模.
자차일위수, 범유득축일서지, 이취정양규모.
* 중양일(重陽日)은 음력 9월 9일입니다. 양수인 9가 두 번 겹쳐서 '중(重)' 자를 씁니다.
* 자(子)는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 집(集)은 개인의 문집입니다.
* 『청장관전서』(한국고전번역원)를 참고하여 다시 번역했습니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습니다. 먼지 털고 반가운 책 한 장 한 장 넘깁니다. 바쁘던 마음이 고요히 잦아듭니다. 『관독일기』 찾아 읽다 '책을 손질하고 붓과 벼루를 씻은 다음'에 밑줄 쫙. 아, 이덕무도 책상부터 정리했네요.
『관독일기』는 스물 네 살 이덕무가 1764년 음력 9월 9일부터 11월 1일까지 쓴 독서일기입니다. 윗글은 머리말입니다. 과거 공부하느라 책 볼 겨를 없었단 말에 마음이 짠합니다. 합격해도 서자라 벼슬 못하나 아버지가 하라시니 하는 공부. 그러다 읽고 싶은 책 보니 얼마나 기쁠까요.
가난하고 자주 아픈 이덕무는 우울한 내면을 읽고 쓰며 달랩니다. '마음에 얻은 것을 날마다 기록하여'! '날마다 기록하여'에 다시 밑줄 쫙. 그랬기에 그의 별명 '청장(靑莊 : 해오라기)'처럼 맑고 넉넉하게 살았겠지요.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이덕무의 다른 글도 좋지만 『관독일기』에는 젊은 날의 순수함을 기억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삶이 무겁고 어려울 때 종종 찾아 읽습니다. 특히 머리말은 공부하기 싫은 날 보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고맙고 보물 같은 글입니다.
사진은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