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닦다 수첩 상자를 열었습니다. 28년 전 오늘 날짜 보니 '한문시간의 대사건'. '뭐지?' 웬만한 일은 다 기억하는데 가물가물해서 작은수첩을 넘겼습니다. '아~ 우유통!' 하늘색, 파랑색 볼펜으로 꾹꾹 담은 글씨에 잠시 그날로 돌아갑니다.
1994년 11월 7~8일 수첩입니다.3교시 한문. 저는 열심히 칠판 글씨 쓰고 선생님께서는 과학기술대(KAIST) 합격한 두 친구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하셨습니다. 한참 쓰다 저도 모르게 옆으로 꽈당! 하필 교단 옆에 우유통이 있었고 아이들이 먹다 남은 우유가 교실에 쏟아졌습니다. 1주일 중 가장 기다리던 시간인데 얼마나 쑥스럽고 죄송하던지.....
같은 날 작은수첩입니다. 수첩에 메모할 칸이 모자라면 작은수첩에 더 썼습니다.일단 휴지로 대강 닦고 후다닥 앉았습니다. 그날 본문 다 써서 그나마 다행이었달까요. 그때 선생님 말씀, "ㄱ이는 한문도 잘하지만 유머 감각도 있어서 많이 웃겨 주는군요. 많이 사랑해 주세요." 순간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우유 쏟은 자리는 쉬는 시간에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그날 칠판에 필기한 본문입니다.
고등학교 『한문 하』(정우상, 정달영) 22쪽."어쨌든 이번 한문시간은 너무도 정신없이 지나갔었음. 선생님께 한바가지 죄송. 딴 친구들에게도. 그래도 선생님 言 때문에 되게 기분 좋았음. 내일은 해가 뜨겠지?" 그날 작은수첩 마지막 줄을 찬찬히 읽습니다. 청소하고 먼지 닦다 오랜 기억을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