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여름, 7월 중순 아니면 하순이었을 어느 날 교회 고등부 분반공부 시간에 한 말씀이 찾아왔습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 개역한글 성경이 개역개정판으로 바뀌면서 '너희 속에'가 '너희 안에서', '우리가'는 '우리는'이 되었지만, 그때 그 말씀은 읽을 때마다 반짝이고 일렁여 수첩에 한 번 더 옮겨 적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 이덕무 글 아끼다 <회잠(晦箴)>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회(晦)'는 그믐이지만 이 글에선 '감추다'로 옮깁니다.) 한 자 한 자 옮겨 쓰면서 마지막 줄 "빛을 속에 감추어 두라. 오래되면 밖으로 빛나리라[斂華于衷(염화우충), 久而外燭(구이외촉)]."를 또 다른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습니다. 가끔 머리가 묵직하면 <회잠> 원문 24자를 수첩에 외워 씁니다. 그러면 생각이 맑아지고 흐트러진 마음이 한 곳으로 모입니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운 "無道人之短(무도인지단), 無說己之長(무설기지장)."을 기억합니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마라."는 뜻으로 중국 후한 사람 최원(崔瑗)이 썼습니다. 그는 형이 괴한에게 죽자 원수를 찾아 복수하고 도망 다니다 죄가 사면되자 긴 글을 지어 의자[座] 오른쪽[右]에 걸어 놓고 매일 보면서 스스로를 가다듬었습니다. "無道人之短, 無說己之長."은 20구 100자 중 첫 문장입니다.
학생들과 한문 격언 수업할 때마다 최원의 좌우명을 설명합니다. 작년에는 저의 좌우명 중 <회잠>도 이야기했습니다. 제 안에 빌립보서 1장 6절과 <회잠>이 반짝이듯 아이들도 수업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북극성처럼 삶의 지표와 방향으로 새길 말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말을 부지런히 찾아 나누고, 무엇보다 반짝이는 말을 삶으로 번역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 좌우명(座右銘 자리 좌, 오른 우, 새길 명) : 늘 자리 옆에 적어 놓고 가르침으로 삼는 말입니다.
왼쪽 사진은 고마운 선생님 글씨, 오른쪽 사진 중 오른쪽 글은 『청장관전서』 『영처문고』에 실린 <회잠>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