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할 수 있을까?'
기차 타고 오는 내내 잠이 안 왔습니다. 새벽 3시 40분쯤 집에 와서 5시 10분까지 2차 시험과 하루 내내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옮겼습니다. 교육청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사무사*에도 여러 분들이 임용 1차 합격자 명단 올려 주던 시절, '230198' 수험번호 여섯 자가 더 묵직해 꼭 합격하고 싶었습니다.
한문학과에서 교직 이수하면서 국문학을 부전공했습니다. 3학년 2학기부터 임용 공부를 시작했는데, 멋모르고 도전한 첫해는 '꼭 된다'보다 '한 번에 될까?'가 더 컸습니다. 학원 다니고 스터디도 해서 교육학과 전공한문 자료는 쌓였지만 제 것으로 풀어내지 못했습니다. 1999년 12월 12일, 부산전자공고에서 허둥지둥 시험을 보았습니다. 잘 안 됐습니다.
졸업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흐린 하늘 같던 나날,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풍』에 실린 이덕무 글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때 6차 고등학교 한문교과서 22권을 8개 영역으로 정리했습니다. 원문과 해석은 공책에 복사해서 붙이고, 예상 문제는 옮겨 쓰고. 2000년 12월 17일에 창원여고에서 두번째 시험을 보았습니다. 커트라인에 가까운 점수였습니다.
기간제 교사 원서 넣고 또 넣어도 답이 없던 날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ㄱ중학교 교무보조원 공고를 보았습니다.
"어떤 일인지 알고 왔어요? ㅂ대 나와서 할 수 있겠어요?"
계장님 말씀처럼 만만치 않은 1년이었지만, 아껴 주고 배려하며 응원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넘겼습니다. 학교 일 배우면서 교실에 출석부를 나를 때마다 싸인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2001년 12월 9일, 수원북중학교에서 세번째 시험을 보았습니다. 113명이나 선발했는데도 미끄러진 날 한문학사 교재 뒷장에 메모한 지도교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암울한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ㄱ중학교 업무를 마무리할 즈음 ㄴ중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었습니다. 세 학년 23학급 23시간, 윤리환경부 청소봉사 담당.
첫날 출석부에 또박또박 싸인하던 설렘은 숱한 눈물과 짙은 자괴감으로 바뀌었습니다. 3학년 수업이 가장 어려웠고, 잔뜩 쌓인 한문공책 검사하다 7시 넘어 퇴근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험 준비할 수 있을까?'
여름방학부터 도서관에서 마음을 다잡다 2학기에는 퇴근하고 밤 10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했습니다. 같은 방 역사과 예비선생님과 종종 쪽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인천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예상 자료를 A4용지 몇 장으로 줄여 시험 전날 여러 번 읽었습니다. 2002년 12월 8일, 인천남고에서 전공 시험지*를 받는 순간 종이가 새까맣게 보였습니다.
'작년보다 어려운데?'
차근차근 숨 고르며 답을 썼습니다. 빈칸 없이 답안지를 채웠습니다.
2003년 1월 10일 1차 합격! 전공 점수가 예상보다 9점 더 나왔습니다. 기쁨도 잠시, 같은 지역에 응시하는 선생님과 2차 스터디를 꾸렸습니다.
"삶은 커다란 모눈종이와 같다. 날마다 모눈 같은 하루를 차분하게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모눈이 꽉 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월 12일 일기처럼 논술 쓰고 서로 봐 주며 면접 연습하면서 1월 21일을 기다렸습니다.
1월 20일, 부산에서 영등포, 영등포에서 주안으로 기차와 전철을 갈아탔습니다. 엄마 고향 언니 여관에서 자고 부평서여중에서 논술과 면접시험을 보았습니다. 논술은 무난하게 썼으나 면접 내내 무슨 말을 했는지 5분을 넘겼습니다. 늦은 밤 일기장에 "아무튼 시험은 끝났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2차 발표를 기다리자."를 또박또박 쓰고 눈을 붙였습니다.
시험을 조금 길게 준비해서 한문과 임용고사 관련 소식을 들으면 빚진 마음이 있습니다. 해묵은 수첩과 일기장에 반짝이는 이름, 그늘진 나날을 다정함으로 물들인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저도 그 마음 닮아 다른 이들의 꿈을 돕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 사무사(思無邪) : 정우영 선생님의 한문과 임용고사 홈페이지. 2000~2010년대 중반까지 한문 임용 준비하던 분들에게 쉼터 같은 곳입니다. 지금은 게시판이 닫혀 있습니다.
* 2003학년도 중등교원 임용고사 한문 기출문제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자료실에서 가져왔습니다.)